‘그것은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그것은 지혜의 시대였으며 무지의 시대였다. 그것은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다. 그것은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으며 희망의 봄이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이렇게 정반대로 대비되는 두 개의 의미가 같은 시간대에 동시에 벌어지는 광경에 대한 묘사로 시작한다. 잘 알려진 대로 프랑스 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린 인간상들과 사회분위기를 그린 소설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새로운 정부가 수립돼 전국이 신선한 분위기에 기대감으로 차 있다. 새 정부의 야심찬 계획들도 여러 가지가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이에 동의하지 못하는 강한 반대의견과 불안감도 존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시대를 어느 방식으로 설명하건 우리나라에 중대한 시기임에는 틀림이 없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는 지난 반년여 동안은 한국 현대사에 처음 있었던 경이적인 정치변동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보전과 발전이라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시민뿐만 아니라 집권을 위한 정치공학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특별한 학습효과를 주었다는 점은 우리 사회에 소중한 경험이며 동시에 우려되는 점이기도 할 것이다.

호주의 외교관이며 아시아 전문가인 맥마흔 볼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아시아의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역저를 쓰면서 그중 한 장을 한국에 할애한다. 그는 ‘한국: 강대국 세력 균형의 시험장’에서 미·소 간의 대결이 한국에서 해결된 후에 미군이 만일 한국에서 철수한다면 그리고 한국에서 다시 전쟁이 발생한다면 미국은 공중과 해상은 몰라도 지상으로는 다시 한국에 돌아올 수가 없을 것이라고 썼다. 다시 말해 미국은 한국만을 위해서 그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 나라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전쟁은 궁극적으로는 한국인의 주체적이고 자결의지의 민족적 통합만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는 사실을 입증시켜준 셈이라고 글을 맺고 있다. 우리의 국력은 경제력과 군사력, 최근의 연성국력까지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주체적이고 자결의지의 민족적 통합을 위한 능력과 의지를 갖췄는가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희망의 비전을 향한 국민의 일치된 컨센서스와 상식을 존중하는 다수결에 의한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지키는 일은 우리의 실상과 괴리가 있고 오직 정치만이 관심을 끌고 있고 발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염려도 드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정세는 격변했고 우리나라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도 아시아 패러독스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바뀐 것이 현실이다. 서울 한복판 을지로 입구에 푸시킨의 동상이 설 정도로 우리나라도 변했다. 구소련 당시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러나 변화하는 환경에서는 정확한 상황인식과 대처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외교도 국방도 국내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면 문제 해결의 기본원리도 유사한 시대 상황의 우리 역사 속에서 찾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조선 말의 역사가 그것을 웅변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 중 전통 우방인 미국과 한민족인 북한과의 새로운 관계 모색은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핵심적인 사안이라 할 것이다. 우리 외교가 해야 할 일은 현안에 대한 성급한 해결 추구보다 우리의 실력과 의지를 배양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마련하는 일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도시 이야기>에서 시드니 칼튼은 자기희생이라는 간단한 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했지만 세상에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난제들이 많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일제의 압제와 동족상잔의 아픔을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우리 사회의 저력을 믿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낙관해본다.

정기종 | 전 주카타르 대사·한국외교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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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