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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보 다리는 파리 센 강의 수많은 다리 가운데 별나게 매력적인 다리가 아닙니다. 알렉산드르3세 다리처럼 화사하지도 않고, 새 다리(新橋, 퐁뇌프)처럼 젊은이들이 밀어를 나눌 움푹 파인 공간들이 있는 것도 아니며, 생미셀 다리처럼 파리의 멋진 스카이라인을 한눈에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내가 처음 파리에 간 1992년 가을에 굳이 그 다리를 찾은 것은 순전히 당신의 그 유명한 시 ‘미라보 다리’ 때문이었습니다. 막상 가서 보고는 실망했습니다. 다리의 북쪽 끝에 당신의 ‘미라보 다리’ 첫 연이 새겨져 있는 것 말고는 아무런 특징이 없는, 볼품없는 다리였습니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른다/ 우리 사랑을 나는 다시/ 되새겨야만 하는가/ 기쁨은 언제나 슬픔 뒤에 왔었지.” 미라보 다리는 오직 당신의 시 ‘미라보 다리’ 덕택에 어떤 위광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파리시(市)가 뒷날 거기에 당신의 시를 새겨 넣은 것도 그것을 노렸기 때문이겠지요. 그 다리 위에서 나는 그 시(詩)를 이어가며 당신과 화가 마리 로랑생의 연애를, 그리고 당신의 실연(失戀)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당신이 이 다리 위에서 바라보았던 파리에는, 에펠탑 말고는 다른 현대식 건물이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내가 그 다리 위에 처음 섰던 23년 전, 거기서 본 파리는 마치 신흥개발 도시 같았습니다. 남쪽 강안의 니코 호텔과 북쪽 강안의 라디오 프랑스 방송사 건물이, 그리고 북쪽으로 멀리 보이는 TF1 텔레비전 방송사 건물이 빚어내는, 파리답지 않은 차가운 풍경 때문이었습니다. 그 건물들은 아무런 미적 고려도 부여받지 못한 서울의 아파트 건물들 같았습니다. 아무튼 이리 볼품없는 다리 위에서 당신이 어떻게 그리 낭만적인 노래를 읊었는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당신의 아흔일곱 번째 기일입니다. 당신은 유럽인들이 ‘아주 커다란 전쟁’이라고 불렀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이틀 전에 삶을 마감했습니다. 포병으로 참전한 당신은 두뇌에 관통상을 입어 그 당시로서는 몹시 위험한 개두수술을 받고서도 용케 살아남았지만, 그 총상에서 회복되던 중에 독감에 걸려 종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38세의 아직 젊은 당신의 삶을 앗아간 것은 그 1년여 사이에 전 세계에서 2000만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이었습니다. 중세유럽의 페스트에 버금갈 만하게 위협적인 독감이었다지요. 그 뒤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한 독감이 국경을 넘어 퍼질 때면, 그 ‘신종’ 독감은 1918~1919년의 스페인독감에 비유되곤 합니다. 물론 스페인독감만 한 위력을 떨친 독감은 지금까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총상의 회복기에 독감으로 죽었으니, 당신이 전사한 것인지 병사한 것인지 조금 모호하긴 합니다. 아무튼 당신은 참전의 대가로 프랑스 국적을 얻었고, 프랑스인으로 죽었습니다. 이방에서의 출생과 성장, 이방인의 피와는 상관없이 당신이 진정한 조국으로 여기고 자부심을 가졌던 나라의 시민으로 죽은 것입니다.

당신이 죽은 나이에 나는 파리에 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도시의 거리들을 끊임없이 걸었습니다. 걷다가 지치면 아무 카페에나 들러 신문을 읽거나 멍하니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시간은 정지돼 있는 것 같았고, 그 정지된 시간 속에서 나는 문득 행복했습니다.

당신이 자주 들렀을 몽파르나스와 몽마르트르는 내가 자주 걷던 거리이기도 했습니다. 오래된 카페들의 외진 자리에 앉아 유리벽 너머로 몽파르나스대로나 테르트르광장을 내다보노라면, 그 카페들의 옛 고객들이 다시 살아나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은 환각이 일기도 했습니다. 그 고객들의 얼굴 가운데는 당연히 당신의 얼굴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비평가 마르셀 레몽에 따르면 당신은 “1905년께부터 1920년 사이에 프랑스 예술이 열어놓은 모든 길에 그 그림자를 드리운 시인”이고, 시인 앙드레 브르통에 따르면 “이 세상 최후의 시인”입니다. 그 말을 했을 때, 앙드레 브르통은 자신을 시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걸까요? 당신은 화가 조르주 브라크와 파블로 피카소가 체현할 입체주의(큐비즘)라는 말을 만들어냈고, 그 입체주의에서 가지쳐나갈 오르페우스주의(오르피슴)라는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또 당신은 초현실주의(쉬르레알리슴)라는 말도 만들어냈습니다. 물론 당신은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였을 뿐 주인공은 아니었습니다. 초현실주의의 주인공이라 할 앙드레 브르통은 1924년의 첫 번째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기욤 아폴리네르에게 경의를 표하여, 수포와 나는 우리가 그 재량권을 획득하여 우리 친구들에게 지체 없이 이바지할 수 있게 된 이 순수한 표현의 새로운 양식을 ‘초현실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렀다”라고 씁니다. 물론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가 당신의 초현실주의와 고스란히 포개졌던 것은 아닙니다. 브르통이 이어서 “오늘날에 이 낱말을 바꿀 필요는 없으나, 우리가 이 말에 부여하는 의미 폭이 아폴리네르의 의미 폭보다 일반적으로 우세하다고 나는 생각한다”고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브르통은 더 나아가 제라르 드 네르발이 <불꽃처녀들>의 헌사에서 사용한 ‘초자연주의’라는 말이 자신의 초현실주의에 더 가깝다는 것도 내비칩니다.

나는 초현실주의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합니다. 그 말에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에서 앙드레 브르통을 거쳐 르네 마그리트에 이르기까지 스물은 넘겠지만, 나는 문학에서의 초현실주의와 조형예술을 비롯한 다른 장르에서의 초현실주의가 어떻게 얽히고 스며 있는지 자세히 모릅니다. 나는 그러나 당신이 작고한 뒤 1920년대부터 활짝 핀 초현실주의가 장르의 벽을 넘어 문인들과 화가들을 묶고, 저널리스트들과 예술향수자들을 아우르는 예술사의 진풍경에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당신은 소위 ‘아름다운 시절(벨에포크)’을 살다 죽었지만, 내 마음속에는 외려 당신이 죽은 뒤의 1920년대 파리가 아름다운 시절로 다가옵니다. 내 상상 속 그 아름다운 시절의 주인공들은 프랑스인들만이 아니라 파리로 몰려든 많은 예술가들, 특히 ‘길 잃은 세대’라 불렸던 미국 예술가들도 포함합니다.

파리에 살 때, 내 아파트는 페르-라셰즈 묘지 근처에 있었습니다. 걸어서 10분 거리였습니다. 나는 그곳에 자주 들렀고, 당신의 무덤을 곧잘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무덤에 새겨진 당신의 시를 읽었습니다. 그 시의 한 대목이 어슴푸레 떠오릅니다. “사람들이 결코 건드리지 못한 것/ 난 그걸 건드렸고 그걸 말했네// 아무도 그것에서 상상하지 못하는 것/ 난 모든 걸 캐냈네/ 그리고 난 여러 번 맛보았네/ 맛볼 수 없는 삶까지도/ 난 웃으며 죽을 수 있네.” 견자(見者)는 랭보가 아니라 당신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신기한 것에 잘 홀리는 부박한 성격 탓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당신의 시집은 <칼리그람>입니다. 그러나 이 11월에는 ‘미라보 다리’가 실린 당신의 첫 번째 시집 <알코올>을 읽으며 황량한 계절을 보내볼까 합니다. 서울 날씨는 보통 파리 날씨보다 훨씬 사랑스럽지만, 11월은 서울도 파리와 비슷하게 을씨년스럽습니다. <알코올>을 읽기에 좋은 철입니다. 파리에 살 때 프랑스어판으로 <알코올>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 허술한 프랑스어로는 당신의 그 시집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던 듯합니다. 마침 이제 내게는 한국어판 <알코올>이 있습니다. 그 시집을 한국어로 옮기고 세세한 미주(尾註)를 단 황현산씨는 당신에 대해, 그리고 초현실주의에 대해 가장 깊이 이해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일 것입니다. 역자 해설에서 황현산씨는 전쟁 중에 당신에게 위문편지를 보내던 한 여성에게 당신이 보낸 편지글의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나는 내 작품에 일곱 사람 이상의 애독자를 기대하지 않지만 그 일곱 사람의 성(性)과 국적이 다르고 신분이 달랐으면 좋겠습니다. 내 시가 미국의 흑인 복서, 중국의 황후, 적국인 독일의 신문기자, 스페인의 화가, 프랑스의 양갓집 규수, 이탈리아의 젊은 농사꾼 여자, 인도에 파견된 영국 장교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이 내 바람입니다.”

이어서 황현산씨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이 일곱 사람 가운데 우리는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감수성과 지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흑인 복서로, 이탈리아의 젊은 농사꾼 여자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아폴리네르의 시에 들어 있다.”

나는 당신의 시집을 펼쳐, 독일의 신문기자가 되어, 첫 시 ‘변두리’부터 읽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넌 이 낡은 세계가 지겹다// 양치기 처녀여 오 에펠탑이여 오늘 아침 다리들 저 양떼들이 메에 메에 운다// 너는 그리스 로마의 고대에 진저리가 난다//…”


고종석 |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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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