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1일 일본 남단인 가고시마현에 사는 한 노인이 별세했다. 그 사건이 전 세계의 이목을 끈 이유는 죽기 직전까지 그 노인이 지구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었던 까닭이다. 19세기의 마지막 해인 1900년에 태어난 나비 다지마는 프랑스의 잔 칼망, 미국의 사라 나우스에 이어 인류 역사상 세 번째로 오래 살았던 사람이다. 말할 것도 없이 생몰 연도가 문서에 기록된 경우만 유효하다. 

나비 다지마는 117년 8개월을, 칼망은 122년 6개월, 나우스는 119년 2개월을 살았다. 모두 여성인 이들은 110년을 넘게 산 초장수(super-centenarian) 인간 집단에 속한다. 가장 오래 살았던 남성은 일본인인 기무라 지무에몬이며 116세를 살았다고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기원전 인류 최초의 서사시를 쓴 수메르의 길가메시를 시작으로 중국의 진시황제 등 수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꿈꾸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은 인간의 생명이 유한하다는 사실만을 밝힐 수 있었다. 생물학에서 자주 발견되는 예외도 죽음을 비켜 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금도 수명을 늘리기를 꿈꾼다. 구글까지 나서서 500세 수명을 목표로 벌거숭이두더지쥐를 연구하고 있다. 보통 쥐의 수명이 2~3년임을 감안하면 30년을 넘게 사는 저 두더지쥐에 과학자들이 현혹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수명은 생물학적 한계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의학과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더 연장할 수 있는 것일까?

지난 세기 인간의 기대 수명이 대부분의 국가에서 증가했던 눈앞의 증거가 워낙 확고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흔히 인간의 수명에 한계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신생아 사망률을 극적으로 줄였던 공중 보건과 환경 위생의 개선에 힘입은 바가 컸다. 미국 앨버트 아인슈타인 의대의 과학자들은 1968년 이후 41개국의 사망자 기록이 담긴 국제 수명 데이터베이스를 훑어서 인간의 수명에 어떤 패턴이 있는지 조사했다. 2016년 네이처에 실린 이들 논문의 결론은 의외로 단순했다. 오래 사는 사람들의 수는 현재에 가까울수록 증가했지만 일정 시점에 이르면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가령 105세까지 산 사람들의 수는 늘었지만 123세까지 살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100살이 넘은 사람 1000명 중 하나가 110살 문턱을 넘는다고 한다. 오래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생물학적으로 장수와 관련된 유전자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것의 실체를 찾아다닌다.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은 일본의 어느 지역을 찾아 거기 사는 사람들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돌연변이를 찾아냈던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역학 연구 결과는 인간의 최대 수명이 125세를 넘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여태껏 오래 살았던 사람 20명의 사진을 보면 우리는 쉽게 인간의 근육에 새겨진 세월의 파괴력을 확인할 수 있다. 단순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인간은 채워진 마개를 연 채 수돗물을 틀어 물을 채우고 있는 욕조에 비유할 수 있다. 수돗물이 계속 공급되지 않으면 욕조 안의 물은 소용돌이를 멈추고 마침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저 간단없이 공급되는 수돗물을 우리는 업이라고도 하고 생물학적으로는 물질대사라 부른다. 인간은 입으로 들어온 영양소를 물질대사를 통해 산소와 버무려 물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하지만 그 효율은 50%를 밑돈다. 열로 소모하는 영양분이 많다는 뜻이다. 물론 우리는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그것을 사용한다.

문제는 산소다. 우리는 폐를 통해 들어온 산소를 다 쓰지 않는다. 그 증거는 적도 부근에서와 극지방 근처에서 정맥에 흐르는 혈액의 색이 다르다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적도 부근에서 정맥혈의 색이 더 붉다. 심장으로 돌아오는 적혈구가 산소를 더 많이 싣고 있다는 뜻이고 이 말은 신체가 산소를 적게 소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와는 반대로 추운 극지방에서는 산소를 알뜰히 써서 에너지뿐만 아니라 열도 생산해야 살 수 있다. 이런 관찰을 토대로 네덜란드 상선의 독일 의사 메이어는 열역학 법칙을 고안했다. 입으로 들어온 영양소가 지닌 에너지는 사람이 수행하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나머지는 열로 변환되지만 총량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맥의 혈액 색깔에서 추론한 것이다. 대단한 상상력이다. 최근 나는 우리가 사용하는 산소의 양이 호흡한 총량의 20%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인간은 이 사용하지 않은 80%의 산소도 덥히기 위해 애를 쓴다. 게다가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의 80%는 질소이다. 겨울에 우리는 저 질소도 덥혀서 공기 중으로 헛되이 내보낸다. 물리학자들은 저 헛된 노력을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표현한다. 물이 담긴 비커에 퍼지는 한 방울의 잉크 입자처럼 인간이 음식을 먹고 욕조의 소용돌이를 돌리는 한 엔트로피는 증가하게 되어 있다. 그 증가된 엔트로피는 120살 먹은 노인의 피부에 새겨진 주름으로, 또 그들을 굼뜨게 걷게 하는 근육의 퇴화로 이어진다. 하나 수명을 연장하려는 노력 한쪽에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으로 살아가는 20대의 팔뚝에 펼쳐질 100년의 세월은 또한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그러니 우리는 낭비되는 산소의 소비를 줄이기 위해 입으로 들어가는 ‘수돗물’의 양을 줄일 일을 심각하게 고려할 때가 되었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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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