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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내리던 눈이 그쳤다. 삽 말고는 별다른 제설 장비가 없으니 별수 있나? 우리 손으로 마을 입구까지 눈을 치운다. 그렇지 않으면 한 걸음에 갈 수 있는 삼거리 매점도 왕복 두 시간을 걸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며칠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이웃집에 마실 가다가 자동차가 빙판에서 돌았다. 잘못하면 전복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기일발의 상황. 긴급출동 구난서비스를 불렀다. 불러 놓고 이웃집에 가서 삽을 빌려다가 얼음을 퍼냈다. 1시간30분 동안이나 얼음을 퍼내어 밭두렁에 버렸다. 빙판 위에서라면 ‘구난차’가 아니라 ‘구난차 할아버지’가 와도 소용없을 테니까.

퍼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독일에서는 벚꽃이 피었고, 러시아와 북유럽에서는 눈과 얼음이 거의 녹아내렸다는데, 우리 동네 겨울은 왜 아직 추운 거지?” 물론 예년에 비하면 확실히 덜 춥다. 눈도 적게 내렸고.

슈퍼 엘니뇨 현상으로 알프스에도 눈이 없다고 들었다. 눈이 없어서 반팔 차림으로 잔디 스키를 탄다니…. 79년 만에 가장 따뜻한 겨울을 맞아 모스크바에 있는 자연 아이스링크도 문을 못 열었고 핀란드 헬싱키의 겨울도 영상이라니 참 별꼴이다. 폭설 대신 토네이도와 물난리를 겪고 있는 도시들 소식까지 보태지면 우리 동네에 내려진 ‘대설주의보’가 되레 반갑다.물론 강원도도 나름대로 이상고온 현상을 겪고 있다. 기상 관측 이래 평균적으로 가장 높은 기온 속에서 빙어축제, 고드름축제 등 강원도의 겨울축제들이 취소됐고 스키장도 눈 부족으로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도 비밀리에 비상 대책을 수립했다. 2018년 겨울을 위해 소치 때처럼 눈을 특수 단열재로 냉동시킨 후 재활용하는 ‘눈 저장 프로젝트’를 시행할 방침이라고. 걱정이다. 가뜩이나 돈이 없어 울상인 조직위가 눈 저장을 위한 추가 비용을 또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지금부터라도 집집마다 ‘금’을 모으듯 ‘눈’을 모아 김치냉장고에 보관했다가 평창올림픽조직위에 가져다 주어야 할까?


미 항공우주국(NASA)이 슈퍼 엘니뇨가 강타한 1997년 12월28일 지구와 올해 12월27일 위성으로 찍은 지구 모습_연합뉴스


프랑스 기상학자 다니엘 괴츠는 “앞으로 겨울철에 눈을 보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미래에는 눈 내린 슬로프를 제공하기가 힘들겠다”고 말했다. 스웨덴 기상청은 “눈이 오는 날 수가 금세기 말쯤에는 최소 40일, 최대 80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 ‘눈’이 ‘금’이 되겠구나 싶다. 운이 좋아야 1년에 한두 번 눈 오는 풍경을 볼 수 있고, 운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눈을 모르고 산다고 생각하니 삭막하기 그지없다. 그런 우울한 미래를 생각하니 눈이 펑펑 내리다 못해 재난처럼 느껴지는 겨울 영화들이 문득 보고 싶다. 눈 덮인 평원이 한없이 펼쳐지는 <닥터 지바고>나 <러브 스토리> 같은 영화들. 유리 지바고와 그의 부인 토냐의 가족이 모스크바를 떠나 지방 영지로 향하는 겨울철 기차 여행은 전부 캐나다에서 찍은 걸로 안다. 그곳에는 아직 눈이 올까? 곱슬머리 남자와 털모자를 쓴 여자가 눈싸움하다가 눈을 막 퍼먹고는 웃음을 터뜨리는 <러브 스토리>의 로케이션 장소가 어디였더라? 뉴욕의 센트럴파크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언감생심, 20도가 넘는 영상 기온 속에서 반팔 입고 다닌다는 뉴욕 말이다.

아니다. 쓰고 보니 왠지 진부하다. 그보다는 스웨덴판 <렛미인> 같은 영화가 좋겠다. <렛미인>은 내가 사랑한 거의 유일한 공포영화였다. 호러영화도 이토록 그림처럼 아름답고 또 한 편의 시처럼 서정적일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 정도. 무엇보다 눈에 파묻힌 스웨덴의 겨울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속의 고요와 침묵이 좋았다. 인공적인 요소를 가미하지 않은 아날로그적인 소리와 침묵을 통해 세상의 온갖 소음에 묻혀버린 미세한 소리를 끌어들이고자 했던 감독의 연출력이 너무도 예술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이제 스웨덴에서조차 <렛미인>에서 보았던 그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겨울 풍경을 볼 수 없게 됐다니 슬프다. 이제 눈이 내리면 ‘스밀라’처럼 느껴보리라. ‘눈이 내려앉은 하얀 들판’이 정말로 ‘어둠 속에서 육각형’을 이루는지 뚫어지게 봐야지. 마치 기적을 보듯.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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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