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다닐 때 내 별명 중 하나는 ‘택배의 여왕’이었다. 마트 갈 시간이 없어 별의별 물건들을 다 인터넷으로 샀는데 집에서 택배 받을 사람이 없어서 주로 회사로 배달시켰다. 그런데 도시와 달리 엄청나게 한가한 시간에 놓인 공간으로 이사와서도 난 여전히 택배의 여왕으로 산다.

시골에는 없는 게 많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유리컵 몇 개, 혹은 쟁반 하나 사려고 원주까지 나가곤 했다. 왕복 두 시간 거리. 그 기름값이면 유리컵을 20개 더 사고도 남는다. 그래서 요즘은 뭐든지 다 인터넷으로 시킨다.

전경린 소설이었을 거다. 이웃의 쓰레기봉투를 뒤져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보를 캐내는 인물이 나왔던 소설인데, 그 소설집 제목이 <염소를 모는 여자>였던 걸로 기억한다. 매일매일의 영수증 일기 같은 걸 써서 그걸 책으로 묶어 낸 정신이라는 여자 작가도 있었다. 내가 산 물건이 나를 규정하고 내 삶의 공간을 구성하기 때문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 재밌다. 내가 주문한 택배 물건들을 배달해주면서 택배 아저씨들은 나를 어떤 여자라고 생각할까?

“여자들이 보통 옷이나 화장품 같은 걸 배달시키잖아요. 그런데 이 여자는 현무암 돌덩이 한 팰릿을 시키더니 얼마 전에는 거지 발싸개 같은 중고 마루를 시켰더라고. 도대체 뭐하는 여자인지….”(경동 택배 아저씨) “황토는 그렇다 쳐. 석고랑 석회, 아마인유 같은 건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주문하는 건지 알 수가 없죠.”(한진 택배 아저씨) “그 여자, 말도 마세요. 얼마 전에는 대패 삼겹살이랑 족발을 시켜 먹던 걸요. 좀 게으른 여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CJ 택배 아저씨)

변명하자면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요즘은 라면, 쌀, 휴지, 세제 등 생필품들을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게 대세다. 대형 마트보다 싸고 선택의 폭이 넓을뿐더러 시간이 절약되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건축 자재처럼 덩치가 큰 물건은 물론 세탁기 거름망이나 똑딱단추처럼 작고 소소해서 어디서도 팔지 않는 걸 구입할 때도 인터넷만큼 요긴한 것은 없다. 심지어 고기나 야채처럼 신선도가 생명인 식품도 인터넷으로 구입하니 만족도가 의외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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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간에서 살다 보니 가장 아쉬운 게 싱싱한 바다 먹거리들이다. 혹시 그것도 인터넷으로 살 수 있을까? 살 수 있다. 신안군 군수님이 직접 나서서 육질이 탱탱한 최상급 완도 광어와 전복을 전국 어디든 택배로 보내주겠다고 광고하는 시대니까. 하지만 온갖 물건을 인터넷과 택배로 구입하는 내가 꼽는 베스트 아이템은 따로 있다. 중고 오디오 기기들. 예전 같으면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팔았을 것 같은 옛날 오디오 기기들을 오디오 애호가들의 사랑방 같은 온라인 장터에서 샀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받고 보니 감동이 밀려든다. 그다지 고가도 아닌 것을 얼마나 꼼꼼하게 포장해서 보내주는지 목이 메인다. 가격에 대비해 얼마나 훌륭한 기기들을 보내주는지 소리를 들으며 감동한다. 음악을, 소리의 작은 차이를 중요시하는 오디오쟁이들의 그 섬세한 열정이 그대로 느껴진다고 할까?

하지만 진심으로 덧붙이건대 나는 사실 인터넷 쇼핑 못지않게 시골 5일장도 좋아한다. 5일장을 도는 장돌뱅이 상인들이 익숙한 솜씨로 좌판을 펼치고, 인근 마을에서 보퉁이를 이고 지고 찾아온 할머니들이 갓 캔 푸성귀들을 펼치며 하나둘씩 자리를 잡는 곳. 산 오징어가 수족관에서 탈출을 시도하고, 꿈틀대는 참문어가 즉석에서 삶아지기도 하는 곳. 그곳에 가면 늘 마음이 설렌다. 얼마나 좋은가? 사람 냄새 맡으며 북유럽 디자인이 아쉬울 것 없는 두툼한 덧버선을 4000원에 살 수 있고 들기름에 막 구워낸 김을 5000원에 3봉 살 수 있다는 게? 튀겨 먹고 구워 먹고 파스타에 넣어 먹기도 좋은 통통한 새우가 20마리에 1만원인 곳.

“지금까지 당신이 먹은 음식을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는 프랑스의 저명한 미식가가 있었다. 글쎄,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사랑하는 음악과 책, 그리고 구입하거나 만든 물건들로 채워진 삶의 공간을 보여주면 당신의 머리와 가슴 속을 그려볼 수 있다”고. 내가 만들고 있는 이 공간이 그런 곳이길 바란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로운 공존 속에서 주인장이 애장하는 사물들의 가치가 구석구석 느껴지는 곳. 아는 사람만 아는 그 공간의 개봉박두 신호를 조심스럽게 보낸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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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