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규항

 

ㆍ“용산참사에서 지배체제의 맨얼굴을 보여주려고 했다”

사회적 목적을 가진 예술창작 집단은 표방하는 바와 소재가 일치하는 경향이 있다. 노동해방을 표방하는 집단은 노동문제를,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집단은 여성문제를. 그러나 ‘연분홍치마’는 여성주의의 시각으로 모든 사회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의 시각은 관객으로 하여금 억압자와 피억압자,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 결과는 억압과 피억압, 가해와 피해의 맥락을 더욱 또렷하게 한다. ‘반이명박’이 사회진보의 유일무이한 기준이 되면서 진보의 수많은 갈래와 결들이 묻히고 뭉개져버린 시절, 그들의 태도는 각별하다. 김일란·홍지유 감독은 <두 개의 문>을 공동 연출했다.

▲ “2009년 1월 철거민 5명·경찰 1명의 죽음.
나와 비슷한 이웃이 받은 폭력, 국가에 그들은 무엇이었는지,
이 분노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우리는 성찰해야 한다”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을 연출한 김일란(왼쪽)·홍지유 감독이 지난 8일 용산참사 현장을 배경으로 서 있다. 참사 3주기가 훌쩍 지났지만 아직까지 텅 빈 공터로 방치돼 있는 재개발구역은 여섯 명의 목숨을 앗아갈 만큼 급박한 철거와 진압이 필요했는지를 되묻고 있다. _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김규항 = 처음부터 다큐 작업을 하기 위해 모인 건 아니었지요.

김일란 = 저희들 정식 이름이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활동의 일환으로 다큐 작업을 해보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2005년에 <마마상>이라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김규항 = 마마상은 오랫동안 성매매 혹은 성노동에 종사하다 늙은 여성을 말하는데요. ‘성매매 특별법’을 가지고 사회적 토론이 활발할 때이기도 하고 내용은 시의적절했는데 만듦새는 어땠나요.

김일란 = 내용에 대한 고민에 비해 미학적 고민이 부족한 작품이었습니다. 그 작품 이후 다큐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예술작업이나 매체작업이 다 그렇지만 테크닉이라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걸 훈련하고 동료들과 공유하고 다큐의 사회적 의미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미디어 인데 2002년에 새로운 여성주의 문화운동을 해보자고 만들어졌어요. 기지촌 여성 성매매 실태조사를 하다가 워크숍을 진행해나갔죠.

김규항 = 그 후 <3×FTM>(2008), <레즈비언 정치도전기>(2009), <종로의 기적>(2010) 등 ‘커밍아웃 3부작’을 만들었지요.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을 조금은 갸우뚱하게 보는 이들도 있겠어요.

김일란 = 만들고 나서야 생뚱맞아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희에겐 매우 자연스러웠는데 저희는 여성주의를 소재나 젠더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세상을 보는 시선, 태도나 방법론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두 개의 문>은 용산참사를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보는 작품입니다.

김규항 = <두 개의 문>에서 도드라지는 건 역시 경찰에 대한 섬세한 고찰입니다. 경찰특공대 대원들은 남일당 건물의 정확한 구조나 상태 등에 대한 충분한 정보 없이 투입되었습니다. 법정에서 ‘생지옥이었다’고 술회할 정도로요. ‘두 개의 문’이라는 제목부터 특공대원의 그런 처지를 드러내는데 피아 구분이 분명한 정통적인 사회 다큐에선 보기 힘든 사례입니다.

김일란 = 공간에 따라서 가해자, 피해자가 변동되기도 하잖아요. 여성주의는 저희에게 어떤 공간에서 누가 배제되는지, 배제의 논리는 무엇인지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줍니다. <마마상>도 성매매 여성 입장에선 중간 착취자인데 무작정 적대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되새겨보는 작품이죠.

김규항 = 피아 구분의 단순화는 근래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통합진보당 사태라는 것도 ‘반이명박’이라는 기준으로 피아를 단순화하다 보니 구분되고 고려되어야 할 다른 가치들이 뭉개지고 은닉되면서 곪아터진 거죠.

김일란 = 참사 직후 저희 둘이 연분홍치마에서 현장에 파견되어 1년여 동안 영상 작업을 했어요.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토론을 많이 했어요. 철거민의 죽음과 경찰의 죽음. 분리된 죽음이 아니라 여섯 명의 죽음을 사회적 의미로 같이 이야기할 때 우리는 무엇을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까. 어떤 공간에선 철거민의 죽음이 왜곡되고 어떤 공간에선 경찰의 죽음이 왜곡되는가.

김규항 = 정치적 이해관계에 연루된 고위직 경찰과 그들에 의해 생지옥 속으로 내던져진 특공대원을 하나로 볼 순 없죠. 그렇다고 해서 철거민과 똑같은 피해자도 아니고요. 가해와 피해는 그렇게 중첩되고 또 중첩되는데요. 시사회에 참여한 분들에게선 오해나 오독은 없었나요.

홍지유 = 노골적으로 반발하는 분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독의 여지는 이 작품이 가진 힘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규항 = 오독될 여지가 있다는 건 관객으로 하여금 사유하게 한다는 것이니까요.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 내편과 저편이 또렷한 다큐는 생각을 차단하고 토론을 없애죠. 같은 편끼리 분노를 재확인하고 저쪽 편은 작품을 무작정 적대하는 건 카타르시스이고 어떤 현실적 변화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김일란 = 경찰 진압과정의 팩트뿐 아니라 진압과정에서 그들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일방적으로 철거민만 옹호하는 방식으로 들어가게 되면 철거민을 ‘순결한 사람들’로 재현할 수밖에 없거든요. 이렇게 되면 옴짝달싹 못하게 돼요. 철거민은 욕망을 가질 수도 없고 비극적 상황만 반복해야 하는 거죠.

김규항 = 피해자, 희생자라는 이름이 만들어내는 억압과 폭력성이 있죠. 그걸 적절하게 배제한 건 좋은 시도였다고 봅니다. 여긴 슬퍼해야 한다, 이 장면은 화내야 한다. 관객들에게 계속 지시와 명령을 내리는 다큐는 의도한 걸 이루기 어렵습니다. 작품 맨 앞에 나오는 ‘경찰 진술과 증거 동영상을 바탕으로 용산참사 재판과정을 재구성한 것이다’라는 자막은 ‘우리는 작품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성찰이자 ‘이 작품은 이렇게 만든 거다’라는 공지이기도 합니다.

김일란 = 예민하시네요(웃음). 찰나적이고 뜨거운 분노도 중요하죠. 그런데 그 분노를 성찰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분노에 이끌리는 게 아니라 분노를 핸들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이 시대에 왜 우리가 분노하는지, 어딜 향해 분노해야 하는지를 성찰해야 하죠.

김규항 = 당파성의 면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우린 당파적인가보다 당파적으로 보이는가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죠.

김일란 = 저희는 당파적이고 <두 개의 문>도 철저히 당파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에요. 물론 시사회에선 여러 반응들이 나왔어요. 객관적이다, 중립적이다, 차갑다. 무슨 소리냐, 뜨겁고 당파적이다. 그렇게 여러 반응들이 나온다는 건 좋은 것 같아요.

김규항 = 유족 인터뷰도 없고 이종회나 박래군 같은 용산범대위의 중심적인 활동가 인터뷰도 없습니다. 이런 소재의 작품에선 아무래도 그런 분들이 주요한 인터뷰이가 되는데요.

홍지유 = 유족 분들 경우는 처음부터 안 했어요. 당사자의 육성을 통해 눈물을 쏟게 만들고 정당성을 다시 한번 재주장하는 방식으로 가진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 방식을 더 잘해내는 게 해결책이 아니라 다른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박래군 선생은 인터뷰는 했는데 범대위 집행위원장이라는 위치가 작품에 부담을 준다고 생각했고요.

김규항 = 사람들은 자신보다 훨씬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 확연하게 동정심을 행사할 수 있는 불쌍한 사람에게 좀 더 쉽게 마음을 엽니다. 용산 희생자들은 대부분 빈곤층에 속하는 분들은 아니죠.

홍지유 = 절대빈곤 상태에 놓인 분들이 당한 폭력은 오히려 연민에서 더 증폭되기 힘든데 그런 분들이기 때문에 작품으로선 좀 더 이점이 있어요.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사람이 받은 폭력에서 느끼는 수치스러움, 국가에 나란 존재가 이거였구나, 이렇게 프레임을 전환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김일란 = 사회적 약자의 정당성이라는 것은 그가 뭘 하는 사람이든 어떤 욕망을 가진 사람이든, 국가가 책임져야 할 문제를 이야기하는 그 정당성이라고 생각해요.

김규항 = 지배체제는 그걸 늘 뒤틀곤 하죠. ‘귀족 노동자’라는 말도 그런 거고요. 연분홍치마는 언제나 현장 활동과 다큐 작업의 병행을 중시했고 공동작업 방식을 취하는데요. 1980년대 진보적 문화활동가들은 집단창작이라는 방식에 천착했지만 이젠 진보적 예술작업에서도 주류 예술과 마찬가지로 한 개인이 도드라지는 방식이 대세입니다.

김일란 = <마마상>을 만들 때 미학에서 개인과 집단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미학적 민주주의’라는 게 가능한가라는 논쟁을 많이 했어요. 작품이 유통되고 상업적인 구조와 만날 때 모든 성과가 감독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죠. 물론 어떤 작업도 평평하진 않아요. 모든 작품에서 더 고민한 사람은 있어요. 더 고민한 사람의 노고와 함께 참여한 사람의 노고가 모두 어우러지는 게 저희가 생각하는 공동작업이죠.

김규항 = 늘 토론하고 논쟁하니 <두 개의 문>을 공동연출하면서도 논쟁이 꽤나 많았겠군요.

홍지유 = 둘이 특징이 많이 달라서 서로 까칠하게 태클을 걸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은 ‘어디 가서 이런 사람 또 만날까’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잘 맞아요.

김규항 = 갈수록 인생이라는 게 이권이나 경제적 불안감 같은 걸로 싸우는 일로 변하고 있는데 미학 갖고 싸운다는 건 최상의 도락이군요.

김일란 = 듣고 보니 그렇네요(웃음). 저희 내부에서 작품들이 감독이나 사람으로 비교되지 않고 연분홍치마의 세 번째 프로젝트와 네 번째 프로젝트로 비교되는 게 장점이 되는 것도 같아요. 그래서 누가 어쨌다 저쨌다가 아니라 지난 프로젝트보다 더 나은 작품을 하고 또 과제를 설정해서 가는 게 중요한 거죠. 예술가들에게 평가는 애써 무시하려 해도 중요하잖아요.

김규항 = 평론가의 말에 가장 관심이 많은 감독은 ‘나는 평론가의 말엔 관심이 없다’고 말하죠(웃음). 개인이 비교되고 우열이 정해질 때 사람은 동요하게 마련인데 공적인 지향이나 의미로 인해 그게 은닉될 때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조직에선 중요한 문제입니다. “2012년 6월, 당신을 이 사건의 증인으로 소환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김일란 = 저희는 관객을 그날 사건의 목격자로 설정했어요. 참사 당일 인터넷 생방송을 본 사람도 1만명 정도는 되고요. 그걸 보지 않았더라도 다들 많은 정보들을 통해 목격했잖아요. 패배감도 지웠으면 했어요. 나는 이 사건의 방관자였다는 패배감. 사건을 목격한 증인으로 출두해서 이 영화를 보고 함께 참사를 진상규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김규항 = <두 개의 문>에 나오는 사실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아는 것들인데요. 그런데 매우 새롭게 느껴집니다. 생각의 재구성 혹은 생각의 재적용이랄까요.

홍지유 = 학교폭력이 연상되었다는 청소년 관객이 있었어요.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밖에서 해결할 수 없는 닫힘의 공간에서 폭력이 어떻게 서로를 피해자로 만들고 가해자로 만드는지 연상되었다고 했어요. 또 한 분은 시위현장에서 전경으로 간 동생을 만나서 너무 많이 울었다. <두 개의 문>으로 동생과 대화를 시작하고 싶다, 서로를 알아가는 일을 상처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하시더군요. 정규직과 비정규직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분도 있었고요.

김규항 = 최악의 비극을 함께 되새기고 소통하면서 치유되고 용기를 얻는군요. 영화 처음에 이명박의 얼굴이 나옵니다.

홍지유 = 이명박의 얼굴로 시작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다른 얼굴을 볼 수 있도록, 그와 달라 보이지만 실은 유사한 정권을 볼 수 있도록, 일개 정권을 넘어 지배체제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현실을 독해하는 영화이길 바랍니다.

김규항 =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요.

김일란 = 독립 다큐의 경우에 제작비는 산출 자체가 곤란해요. 둘이 작품에 집중했던 기간이 1년 정도인데 한 사람이 월 100만원씩 치면 2400만원이잖아요, 거기에다 촬영이 붙고 사운드 믹싱, 음악, 번역 등 후반 작업을 다 계산하면 1억원을 훌쩍 넘죠. 하지만 저희 인건비는 아예 산정 안 하니까요. 심지어 다큐 찍으면서 먹고사는 문제는 따로 해결해왔죠.

김규항 = 말 나온 김에 편하게 말씀해보세요. 독자들도 궁금할 테고, 또 연대를 원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김일란 = 저희가 지금도 아르바이트를 하다 달려왔거든요(웃음). 아르바이트를 조금만 덜 할 수 있다면 훨씬 더 작업에 전념할 수 있을 텐데요. 매달 5000원씩, 1만원씩 내는 후원회원들이 100명 좀 못 되는데 300명을 만드는 게 저희 목표예요. 그렇게 되면 저희 다섯 명 모두 활동비를 받을 수 있게 돼요.

홍지유 = 독립영화는 개봉 첫주에 객석이 채워져야만 상영회차가 늘고 장기 상영을 할 수 있는 도화선이 되거든요. 21일에 개봉하는데 기왕 보실 거라면 그 주말 객석을 채워주시면 참 좋죠. 김 선생님은 GV(관객과의 대화)에 와주시면 좋겠고요(웃음).

김규항 = GV도 하고 후원도 하겠습니다. 개봉 극장이 전국에 10개 정도인데 대개 100석도 안되는 작은 극장들입니다. 고단한 사람들에게 치유와 용기를 선사하는 영화가 그걸 못 채울까요.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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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