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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전형적 모범생이었는데 대학가니 배울 게 없어서 ‘교육’에 관심”


오늘 한국인에게 교육문제는 주요한 사회문제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절체절명의 문제다. 고위공직자 청문회의 하고많은 위장전입자들도 ‘죄송합니다. 아이 교육문제 때문에….’ 한마디면 관대한 처분을 얻어낼 만치. 어지간히 사회비판적인 사람도 아이 교육문제 앞에선 ‘현실은 어쩔 수 없다’고 뒷걸음질 칠 만치. 괴멸되다시피 한 교육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제대로 놀지도 제 꿈을 가꾸지도 못한 채 시들어가고, 엄마들은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인생을 헌납한다. 그러나 그런 현실에도 여전히 대안과 희망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현병호는 그중 한 사람이다.


대안교육 전문지 ‘민들레’ 발행인 현병호 (출처 : 경향DB)



▲ ‘앞으로 나란히’ 줄세우기 교육

스스로 생각하는 힘 꺾어


▲ 몰입의 경험이 아이를 키운다

놀이에 몰입해 본 아이가 공부·일에도 몰입


▲ 아이들에게 꼭 가르쳐야 할 건

관계 맺기와 자기 일 열심히 하기


김규항 = 교육운동가로 살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현병호 = 어릴 적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는데 막상 대학에 들어와 보니 배울 게 없었어요. 군대 다녀와서 복학을 포기했고 많이 고민하고 방황하면서 대체 뭐가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까 고민하다 내가 받았던 교육을 하나하나 되짚어보게 됐어요. 교육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거죠. 어릴 때 우리가 가장 열심히 배운 것 중 하나가 ‘앞으로나란히’인데 수백명이 있어도 기수 한 사람만 정해지면 몇백 명이 설 자리가 획일적으로 정해지죠. 그러니까 내가 설 자리, 걸어갈 길을 스스로 찾지 못하고 앞만 보게 되는 거죠. 공부할 거리도 책도 선생님도 다 정해주고, 시간표도 정해주고 진도까지 다 정해 주잖아요. 그런 교육을 받고도 기계가 안되고 이렇게 사람으로 사는 거 보면, 사람 정신에도 간 같은 기능이 있는가 봐요.(웃음)


김규항 = 기계가 되어버린 사람도 많지요.(웃음) 저와 동년배시지만 그 교육은 적어도 국가교육의 의도에서 볼 때는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현병호 = 근대화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길러내는 데는 아주 성공적이었죠. 산업자본주의에 맞는 표준화된 노동자들, 6년, 12년씩 개근하는 근면성실한 노동자, 말 잘 듣는 시민을 길러냈으니까요.


김규항 = 그런데 독재가 물러나고 자본이 직접 지배하게 된 오늘 한국 교육은 자본에조차 좋지 않다고들 합니다. 한 대기업 연수원장과 대화하는데 ‘현재 한국 교육은 기업 입장에서도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더군요. 이른바 변화한 시장 환경에 맞는 창의성 있는 인재가 필요한데 여전히 벽돌을 찍어내듯 한다는 거죠.


현병호 = 국가주도 교육의 기본 패러다임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교육부 명칭이 김대중 정부 때 ‘교육인적자원부’로 바뀐 것이 그 점을 단적으로 말해주죠. 차이가 있다면 시장에 좀 더 친화적으로 변했다는 정도죠. 근데 말씀하신 것처럼 시장 입장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아 하죠. 활용가치가 높은 인적자원을 생산하려는 국가 차원의 노력이 개인 차원에서는 고가에 잘 팔리는 상품으로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집니다. 이전에는 일류대 졸업장만으로도 충분한 스펙이 되었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까 저마다 경쟁적으로 스펙을 쌓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게 되는데, 그럴수록 창의성하고는 거리가 멀어지는 거죠.


김규항 = 창의성이나 혁신 같은 말들이 일률적인 복종을 강요하던 시절엔 저항의 의미가 있었는데 이젠 자본의 전용어처럼 되었어요.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사람은 낡은 사람으로 취급되고 상품의 변혁을 추구하는 스티브 잡스는 혁신가로 추앙받죠. 그러나 현재 교육은 어떤 맥락에서든 창의성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현병호 = 창의성은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다 보면 저절로 생겨나는 거지, 선착순 달리기를 시켜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죠. 몰입의 능력을 길러주는 게 교육이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근대학교 시스템은 사실 이 몰입을 체계적으로 가로막는 시스템이잖아요. 한참 그림 그리다가도 종 치면 끝이잖아요. 몰입도 연습이 필요해요. 어린아이들을 보면 잠깐씩이지만 뭔가에 깊이 몰입하거든요. 최신 뇌과학 연구로는 어린애들은 하루에 몇십 번씩 열광 상태에 빠진다고 하잖아요. 사람은 누구나 몰입할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났다고 봅니다. 부모나 교사가 그걸 북돋워줘야 하는 거죠. 어렸을 때 제대로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꼭 필요하죠. 놀이에 몰입해본 사람은 공부나 일에도 몰입할 수 있게 되죠.


김규항 = 편해문 선생의 말대로 놀이는 아이의 밥이죠. 못 먹으면 죽는 게 밥인데 우리 아이들이 굶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교육부 명칭이 교육인적자원부로 바뀐 건 김대중 정권에서였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권위주의 교육을 반대했지만 시장주의 교육은 선봉에 서다시피 했지요. 그 결과는 참혹합니다. 진보적인 사람들의 성찰이 필요한데 체벌이나 두발·복장 통제 같은 권위주의 교육의 문제에 집중하면서 아이들이 상품으로 키워지는 문제는 회피하는 듯합니다.


현병호 =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한 것은 국가가 경쟁 패러다임에 완전히 포박되었다는 고백이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민사회도 모두 손을 든 건 아니지만 이렇다 할 견제 세력이 눈에 띄지 않는 건 사실이죠. 시장화에 맞서는 건 어떤 단체나 세력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개인이 실존 차원에서 결단해야 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대안교육도 초기에는 통제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교육을 추구한 경향이 있었죠. 그러다 점차 교육 현상의 문제를 넘어 사회구조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대안의 지향점을 찾게 되었죠. 지금 일어나고 있는 대안교육 정명운동도 그런 맥락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라고 봅니다.


‘민들레’ 발행인 현병호씨가 출판사 직원들과 포즈 (출처: 경향DB)


김규항 = 정명론이라는 게 세상이 흐트러질 때는 이름부터 흐트러진다, 세상을 바로잡으려면 이름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인데요. 한국 사회에 딱 들어맞지요. 박정희가 독재정치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한 일부터 근래 시장의 문제를 덮고 권위주의 문제에 집중하는 걸 ‘현실적 진보’라고 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대안교육에서 정명운동은 어떤 것인가요?


현병호 = 우리가 도대체 뭘 위해 대안학교를 만들고, 대안교육이란 이름으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느냐 하는 자기 물음을 던지는 것입니다. 시장화라는 건 모든 걸 대체 가능한 상품으로 만든다는 걸 뜻하죠. 교육의 상품화는 이 교육슈퍼마켓에서 이 상품 대신 저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고, 배움의 주체가 소비자 마인드를 갖는다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배움의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가로막는 것이라고 봅니다. 교사도 대체 가능한 존재가 되어버리면 더 이상 교사와 학생 사이에 깊은 만남이 이루어질 수 없고 교육이 가능할 수 없죠. 대안교육 정명운동이란 것은 단순히 대안교육의 철학 세우기나 대안사회의 청사진을 그리는 작업이 아니라 교육에 임하는 주체들이 각자 자기 삶의 지향점을 인식하고 나는 무엇을 위해 배우고 가르치는지를 자각하자는 운동입니다.


김규항 = 체제의 관점에서 보면 시장화는 민주화를 수반하기에 억압적인 통치가 어려워진다는 어려움이 있어서 저항 세력의 체제 내화가 필요합니다.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전투성이 사라진 건 그 전형이고 전교조 운동이 힘을 잃어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 있습니다. 1500명이 해직되는 탄압을 받을 때도 사수했던 전교조의 저항성이 합법화하고 교사라는 직업의 경제적 안정성이 높아지면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지요.


현병호 = 저항을 무력화시키려면 떡을 물려주면 되는 거죠. 떡을 물고는 소리를 지를 수 없으니까요. 우리나라 교사의 급여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에서 최상위급이라고 합니다. 교원 복지는 양날의 칼 같은 것이죠. 교원노조가 교사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할수록 교육의 질은 떨어질 수 있는 거죠. 단순히 직업으로 교사를 택하는 이들이 늘어나니까. 노조는 교육운동단체로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아이들과의 관계를 생각하기보다 교원 집단을 우선 생각하게 되니까요. 교육의 본질은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에 있는 건데 말이죠.


김규항 = 교사들이 갈수록 모범생으로만 구성되어 가는 현상도 걱정입니다.


현병호 = 내신 1등급 아니면 교대나 사대를 가기도 힘들죠. 그렇게 대학에 들어가서는 또 내내 시험공부만 하다가 임용고시를 어렵게 통과해서 교사가 되잖아요. 이렇게 성장한 교사들이 자신과 다른 성장과정을 거치는 학생들과 제대로 교감하기란 쉽지 않죠. 모범생이 모범생을 길러내는 구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김규항 = 민들레는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말합니다.


현병호 = 우리가 정말 잘 사는 데 필요한 건 두 가지인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을 줄 알고, 또 하나는 자기 길(일)을 찾아서 열심히 사는 거죠. 흔히 대안적인 사회를 이야기할 때 드는 생태니 평화, 공동체성, 인권 같은 말들은 결국 한 가지를 다르게 표현한 말이죠. 서로 살리는 관계를 맺자는 거. 그런 감수성과 능력을 기르는 게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봅니다. 또 하나는 길 찾기 능력을 기르는 건데, 자기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신명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거죠.


김규항 = 다른 사람과 관계를 잘 맺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 사람이 행복하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이기도 하죠. 현재 우리 교육에서는 아이와 다른 아이들이 적으로 만나고 모든 직업은 하나의 수직선으로 서열화됩니다. 간단치 않은 일이고 여러 복잡한 원인이 있는데 짚어가다 보면 결국엔 부모의 불안감이 나옵니다.


현병호 = 남보다 한 발이라도 앞서려고 바동대기보다 자기 페이스대로 걸어가는 사람을 기르는 게 중요합니다. 한마디로 자기답게 살자는 겁니다. 그러자면 아이에 대한 믿음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중요한데, 부모가 자기 삶에 자신이 있으면 설령 검증이 되지 않았더라도 아이의 미래에 대해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역시나 불안감에서 아주 자유롭기는 힘들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같이 공부도 하고 서로 용기를 주면서 버티는 거죠. 대나무들이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을 수 있는 게 서로서로 지탱해주기 때문이죠.


김규항 = 좌판에도 함께했던 음악가 김두수 선생이 얼마 전에 유럽 순회공연을 했는데요. 파리 공연을 주관한 기획사 대표를 만나보니 23살이더랍니다. 한국의 23살 청년들을 생각하며 마음 아팠다고 해요.


현병호 = 민들레 드나드는 아이 중에도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이 몇 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또래 친구들이 참 어려보인다고 그래요. 자기들은 10대에 이미 경험한 과정을 그들은 대학에 와서야 치르니까 그럴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대학 가서도 실망하고 휴학을 하거나 유학을 떠나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들의 성장이 전반적으로 지체되고 있는 것 같아요.


김규항 = 목숨을 버리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절대빈곤이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아이는 오히려 적지요.


현병호 = 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아이들이 많은 건 사실상 교육의 자살이라고 봐야겠죠.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언론도 그렇고 다들 무덤덤한 것 같아요. 워낙 사회 전반적으로 자살률이 높아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약자들이 목숨을 쉽게 버리게 만드는 사회인 건 분명한 것 같아요. 아이들도 그중 하나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처지다 보니까 그런 식으로 외치는 거라고 봐야죠.


김규항 = 사실 누구도 아이를 힘들게 만들려는 사람은 없지요. 부모들은 교육이 잘못된 건 알지만, 아이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위해’라는 말처럼 위험한 말도 없지요.


현병호 = 일종의 자기합리화 같은 거라고 봐야겠죠. 그러지 않고는 불안을 감당할 힘이 없으니까. 결국 부모의 미성숙함이 문제라고 봐야겠죠. 어른이 되는 교육을 제대로 못 받고 자란 탓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교육 탓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도 사람은 과일이랑 다르게 성숙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죠.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미숙한 사회이긴 하지만 저는 점점 성숙해지고 있는 과정에 있다고 봅니다.


김규항 = 민들레가 15주년이 되어갑니다. 앞으로의 15년이 궁금합니다.


현병호 = 민들레는 탈학교사회를 지향해왔고 앞으로도 그 점에서는 다르지 않을 거라 봅니다. 그런데 탈학교는 학교를 벗어나자는 게 아니라 교육이 제도화되는 걸 경계하자는 겁니다. 교육이 제도화되는 건 의료보다 더 피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국가뿐만 아니라 기업, 종교단체까지 교육에 이해관계가 걸린 집단이 많으니까 그런 거죠. 그런 점에서 교육운동은 체제 안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교육문제가 어려운 건 우치다 타쓰루 선생의 비유처럼 주행 상태에서 자동차의 고장 난 부분을 수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사들이, 또 부모들이 바뀌지 않고는 교육이 바뀔 수 없듯이,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자가치유를 하면서, 또 서로 격려하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데 함께할 생각입니다.


김규항 = 말씀대로 함께 치유하고 격려하면서, 내 아이 걱정, 남의 아이 걱정 함께하면서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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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