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육은 국가의 부정을 목표로 하는 좌파들의 영향력을 일소해야 한다. 역사는 ‘올바르게 해석된’ 공정성에 기초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누군가가 한 말일까? 나치 정권의 말이라 한다. 국정화 역사교과서를 반대하는 사람들로선 ‘역시 박근혜 정부는 나치와 다름없구나’ 탄식이 나올 만하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히 다른 게 있다. 과연 오늘 한국에 ‘국가의 부정을 목표로 하는 좌파들’이 역사 교육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만한 수준으로 존재하는가?

박근혜 정권이 좌파라 지칭하는 대상은 주로 새정치민주연합을 중심으로 한 야권이다. 그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십년 전 국가의 부정을 목표로 하는 좌파였던 건 사실이다. 그 일부는 북한 체제에 호감을 가지거나 신봉하는 경향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신봉자로 전향한 건 오래전 일이다. 그들은 국가를 부정하는 좌파가 아니라 국가 안에서 권력과 헤게모니에 집중하는 우파다. 그들은 여권과 적대적이지만 그 적대성은 이념적 적대성이 아니라 정권과 헤게모니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적대성이다.

국가의 부정을 목표로 하는 좌파들이 없다는 말이냐? 물론 있다.(이른바 ‘자유 민주주의 사회’라면 있어야 당연한 거 아닌가?) 종북 세력? 있다 뿐인가. 북한과 연루된 간첩도 있다. 그러나 사회에 혼란을 가져오기엔 턱도 없는 영향력을 가질 뿐이며, 국가를 부정하는 혹은 종북이라는 본연의 활동은 고사하고 제 존재를 지탱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형편이다.

어지간히 세상 물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왜 만날 야권이 국가의 부정을 목표로 하는 좌파들인 양 말할까? 물론 그들 패거리엔 수십년 전 눈과 뇌가 콘크리트처럼 굳어 우파적 상식조차 빨갛게 보는 가련한 사람들(최근 사례로는 방송문화재단 이사장 고영주씨처럼)도 있긴 하다. 그러나 여권 주류가 그런 건 아니다. 설사 정서적으로는 그렇더라도 그걸 그리 즉자적으로 정치적 행동에 옮길 만큼 어리숙하진 않다. 두 번이나 집권 중이고 한쪽에선 사람 취급을 못 받으면서도 여전히 상당 수준의 지지율을 유지하는 능력자들 아닌가. 그들은 철저한 계산과 전략 아래 이 놀음을 벌이는 것이다.


이상한 건 오히려 야권이다. 그런 거짓 딱지놀음을 당하면서도 딱히 반발하거나 항변하지 않는다. 수십년 전 박근혜씨의 아버지와 그 후계자들 앞에선 극구 좌파가 아니라 항변하던 사람들이 왜 지금은 짐짓 그 놀음을 즐기는 얼굴들일까. 수십년 전 좌파 딱지는 그들을 곤경에 몰아넣고 목숨마저 앗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딱지는 그들을 좀 더 야권스럽게, 진보스럽게 치장해주는 훈장이다. 그런 딱지놀음을 통해 두 세력은 ‘싸우는 여야’의 모양도 만들고 ‘대립하는 좌우’의 모양도 만들면서 ‘적대적 공생관계’를 구가한다.

지난 100여년 한국 역사에서 주요한 지배 체제는 대략 셋이다. 일본제국주의 체제, 극우독재 체제, 그리고 신자유주의 체제. 앞의 두 체제에서 두 세력은 적대적인 편이다. 특히 두번째에서 그렇다. 그러나 세번째, 오늘 우리 삶을 경제는 물론 사회 문화, 인생관과 교육관과 영혼의 말단까지 규정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두 세력은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오히려 야권이 두 번의 집권 시절 체제의 기틀을 잡고 여권이 이어받았다는 게 객관적 사실관계다.

결국 교과서 논란은 현재 지배체제의 두 분파가 노동악법 등 대다수 사회 성원의 삶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들을 무리 없이 돌파하려는 전략에 이용되고 있는 셈이다. ‘야권이 국정화 교과서 논란에 말려들어 민생 현안을 도외시한다’는 비판은 거꾸로 된 말이다. 야권은 민생 현안에 집중하면 할수록 ‘야당 같지 않은 야당’이니 ‘2중대’니 하는 비난에 처할 수밖에 없다. 야권의 소망은 무엇이든 야당스럽게 보일 수 있는, 여당과 치열하게 싸울 수 있는 소재를 찾는 것이다. 국정화 역사 교과서는 그들에게 여권이 제공한 고마운 선물이다.

물론 국정화 역사교과서를 반대한 모든 사람이 그런 더러운 정치놀음에 가담한 건 아니다. 그러나 그 반대가 반대의 함성에 그친다면 필시 동원되고 놀아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역사 교육에서 좀 더 주인이 되어야 한다. 나쁜 교과서에 아이들이 풀빵처럼 찍혀나오는 것처럼 생각하는 건 천박한 교육관이다. 국정화를 반대한다고 검인정이 목표가 되어서도 안된다. 더 대안적인, 더 다양한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노동자는 노동자의 관점에서, 평화주의자는 평화의 관점에서,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역사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노동악법을 비롯한 문제들은 한번 밀리면 좀처럼 돌이켜지지 않는다. 저들도 그걸 잘 알기에 저러는 것이다. 순정한 분노만으로도 충분하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저들이 저리 교활하기에 좀 더 현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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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