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오늘 유난히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엄마는 하숙을 치는 걸로 우리 형제 다섯을 키우셨다. 내가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내내, 그리고 내 위의 형제들이 학교를 다니던 거의 모든 시절, 어머니는 매일, 많게는 자식들과 하숙생들을 합쳐 스무 명에 가까운 몫의 밥을 해야 했다. 물론 도시락도 싸야 했다. 자식들의 도시락뿐만 아니라 하숙생들의 도시락도 쌌다.         

하숙집은 구식 한옥이어서 따로 식당 같은 게 있지 않았다. 높은 문턱을 넘어 들어가고 나와야 하는 부엌에서 밥을 해 밥상에 차린 밥을 방마다 나르고, 마루에도 상을 폈다. 가난한 살림에 간신히 호구지책을 하는 하숙집 주인의 가장 큰 걱정은 쌀걱정, 연탄걱정이었다. 쌀이 있어야 하숙도 치고, 연탄이 있어야 하숙방도 데울 수 있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하숙비를 제때 내는 하숙생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돈을 못 내는 하숙생도 그 돈을 못 받는 하숙집 주인도 안타깝기는 서로 마찬가지였다. 저녁이면 하숙집 주인 식구들이 자는 방에 들어와 그 이불 속에 같이 발을 묻고 TV를 보던 하숙생들, 지나치게 한 식구 같아 하숙비 안 낸다고 쫓아낼 수도 없었고, 구박도 못했다.

하숙생들과 똑같은 반찬으로 받던 밥상이 화려했던 기억은 없다. 김치찌개, 계란찜, 소시지, 오이지, 짠지, 간혹 동태찌개, 고등어구이가 있었고, 어쩌다 한번씩, 하숙생과 자식들의 생일날 같은 때에 고기반찬이 살짝 오르는 정도였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언제나 푸짐했던 기억은 있다. 솥에서 부글부글 끓던 김칫국, 커다란 양푼에 버무려지던 콩나물, 들통에서 끓던 칼국수.        

양이 많은 음식에 정성이 보태지면 얕은 맛이 아니라 깊은 맛이 푹 고아져 나오기 마련이다. 하숙생들이 열 명이 넘고, 자식들이 다섯이나 되는데, 그 하숙생들의 친구, 자식의 친구들이 또 밥을 먹으러 왔다. 라면 하나도 우리 엄마가 끓여주면 더 맛있다고 했다. 괜한 칭찬이나 아부였을 리가 없다. 적어도 울엄마는 ‘밥하는 전문직 여성’이었으니까. 그걸로 돈도 벌고 자식도 키우는 사람이었으니까. 김장 때가 되면, 온 친척들, 온 지인들이 다 와서 하룻밤을 묵어가면서 마당 한가득 쌓인 배추를 절이고 무를 썰고 소를 채웠다. 누구도 그렇게 큰 김장을 해본 사람은 없었다. 전문직 여성답게, 울엄마, 양을 챙기고, 맛을 챙기고, 위생을 챙겨가며 진두지휘를 했다.

엄마가 하숙집을 하게 된 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였다. 갑자기 가장이 된 엄마였지만, 할 줄 알고, 할 수 있는 일은 ‘밥하는 일’뿐이었다. 그러니까 ‘동네 밥하는 아줌마’였던 우리 엄마가 ‘밥하는 전문직 여성’이 된 계기는 이렇게 생계형 이유였지만, 그 직업의 고결함이 자식들을 바르게 키우고, 하숙생들의 타향살이를 위로했다. 최소한 그들은, 잘 먹고, 맛있게 먹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자식 밥 먹이는 일이었다. 애가 도무지 밥을 안 먹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깨작깨작, 입에다 밥을 갖다대는 시늉만 하는 식이었다. 매 끼니 전쟁을 치렀다. 그 전쟁이 얼마나 치열하고 힘들었는지는, 세상에, 하나님만이 아실 일이다. 이 아이가 커서 학교엘 가고, 도시락을 급식으로 대신하게 되었을 때, 내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엄마가 해주는 밥도 간신히 먹는 애, 급식은 먹겠나. 급식도 엄마밥 같은 거라고, 아이를 설득한 말은 곧 소용이 없어졌다. 편식도 편식이었지만, 맛도 문제였고, 위생도 문제였다. 아이는 급식을 남기고, 야단을 맞고, 벌을 서기도 했다. 남긴 음식에 물을 부어 다 들이마시라고 한 선생도 있었다. 물론 오래전의 얘기다. 설마 지금도 그런 교사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그 시절, 급식조리사들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걸, 이제 와서야 깨닫는다. 밥이 맛있으려면 밥하는 사람이 행복해야 하는데, 밥하는 마음이 주인 같아야 하는 건데, 그 손에서 나오는 밥이 왜 그렇게 정성에 못 미치고 맛이 없는 줄 그 까닭은 생각하지 못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면서 ‘노예노동’이라는 말을 했을 때 어떻게 아연하지 않을 수 있었겠나. 그들의 입장에서도 그랬지만, 그들이 해주는 밥을 먹어야 하는 아이들의 입장에서도 그랬다. 급식조리사들의 옹이 박힌 손이 찍힌 사진에서 한동안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그 손이 만든 밥, 내 아이들이 먹는 밥, 모두가 행복한 밥이어야 하건만.

학교 급식노동자들을 ‘동네 밥하는 아줌마’라 하고, 심지어는 욕설까지 했다는 이언주 의원의 발언에 대해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사람보다 더 상스러워지고 더 막되지 않고서야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그런 말을 지금 여기에다 쓰면 방송에서처럼 ‘삐소리’ 처리가 되지 않겠나. 이 막돼 먹은 국회의원께서 본인의 홈페이지에는 ‘엄마의 시선으로’라고 썼다는 걸 보면, 본인 역시 엄마의 자리에 있는 모양이다. 왜 하필 시선이었을까? 마음은 아니고?

세상의 모든 엄마는 동네 밥하는 아줌마다. 국회의원이든 변호사든 기업의 간부든, 그 어떤 다른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기본은 동네 밥하는 아줌마, 내 새끼들 밥해주는 아줌마다. 학교 급식노동자들과 연계시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말이 비하의 말로 쓰여서는 안된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면 안된다. 이분이 하필 여성이어서 ‘같은 여성의 입장’이라는 말도 등장한다. 가당치 않다. 자신의 존재의 자리를 알지 못하면, 그 자리의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분, 자신의 가치를 모두 잃었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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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