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가 지나갔다. 10월의 하루하루들, 날이면 날마다 햇살이 얼마나 좋고, 공기와 바람이 얼마나 좋은지 툭하면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굳이 공원이나 산책로를 찾지 않더라도 그저 햇살 아래 잠깐 가만히 서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노곤노곤해지고, 마음 속에 날이 서있던 어떤 것들이 가만가만 구워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계절을 왜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을까. 내 생각에 가을은 책을 읽기보다는 밖에 나가 노는 것이 더 좋은 계절이다. 연휴 중의 하루, 책을 들고 공원에 나갔으나 책을 펼치는 대신 그 위에 손을 얹은 채 햇살 구경에만 넋이 빠졌었다. 그런 풍경, 그런 바람, 그런 햇살과 그늘 속에서는 내가 책 속의 이야기, 책속의 풍경이 되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곳, 내가 앉아있던 공원의 벤치에서는 새로 신축 중인 도서관이 보였다. 숲속에 지어지고 있어 이름도 숲속도서관이다. 그 도서관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가슴을 두근두근하며 문 여는 날을 기다리는 중이다.

도서관에 관한 내 추억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시작된다. 나는 그때 독립문 근방에 살았는데,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사직공원이 있었고, 그 안에 어린이 도서관이 있었다. 시립어린이도서관이라니. 당시에 그런 곳이 얼마나 되었을까. 도서관도 귀하고, 물론 어린이 도서관은 더욱 귀했을 것이다. 책 한 권 사기 위해 아득바득 용돈을 모아야했던 시절, 도서관은 천국과 같았다. 책읽는 습관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칭찬을 받던 시절의 일이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상도 받고 그랬었다. 무지 잘난 어린이가 된 기분이곤 했었다.

나중에 커서는, 그 도서관의 위층 열람실을 이용했다. 정독도서관, 사직도서관, 그런 곳을 책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요일에 중간고사, 기말고사 공부를 하러 다녔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긴 줄을 서야 했고, 그러느라 새벽부터 지쳐 열람실에 들어가서는 엎드려 잠부터 자는 게 일이었다. 깨어나면 점심 때였고, 배가 고팠다. 도서관 지하에서는 값싼 우동을 팔았던 것 같다. 공부하러 왔으니 도서관 풍경 같은 건 아무 상관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사직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있으면, 그 아래 일층 어린이도서관이 늘 그리웠다. 넓은 창과 넓은 책상, 수많은 책들. 그곳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 같던 기분.

운이 좋아 어린이도서관 근처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음에도, 도서관이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책읽는 곳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아주 오랜 후의 일이었던 것 같다. 학창시절 내내 도서관을 공부하는 열람실로만 썼기 때문이다. 줄을 서고, 책상 위에 연습장과 책을 쌓아놓아 영역표시를 하고, 엎드려 자고, 값싼 라면과 우동을 먹기 위해 매점을 들락거리던 기억. 학교를 떠난 후에는 근처에서 도서관을 발견하기도 힘들었다. 동네에 도서관이 새로 생긴 후에도, 공부할 것도 없는데 저긴 뭐하러 가나, 했었다.

한동안 도서관을 책읽기 좋은 곳으로 만든다는 켐페인이 있었던 것도 같다. 편안한 의자를 놓고, 대출을 손쉽게 만들고, 장서 수를 늘이고, 도서관 수도 늘였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도서관에서는 일인당 일곱권의 책을 한 번에 빌릴 수 있고, 그 책을 연장기간까지 합쳐 3주까지 읽을 수 있다. 매달 한 주 동안은 14권까지도 빌려준다. 없는 책은 서점에서 살 수도 있고, 그 책값을 도서관이 내주기도 한다. 놀라운 서비스가 아닐 수 없다.

책이 귀했던 시절, 어린이 도서관이 있던 사직공원으로 걸어가던 길이 다시 떠오른다. 30분 이상을 걸어서 가야 했으니 어린아이에게는 그리 가까운 거리라고 할 수 없을 터였다. 그러나 그 길이 매일매일 두근두근했었다. 벽을 가득 채운 동화책들, 그리고 햇살이 은은히 스며들던 넓은 창들, 칸막이 없이 넓직넓직하던 책상들.

기억은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사직도서관을 빌려 지금 내가 꿈꾸는 도서관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넓은 창, 좋은 경치, 넓직한 자리, 그래서 책을 무슨 사명처럼 머리를 파묻고 읽는 게 아니라, 그저 읽다 말다, 읽다 쉬다 할 수 있는 곳. 독서가 너무 엄숙하지 않은 곳, 숨막히지 않는 곳.

어쩌다 해외에 나갈 일이 있을 때, 그 도시의 도서관을 찾아가보는 것은 글쓰는 사람으로서 일종의 습관같은 것일 터이다. 그곳의 언어를 모르니 그곳의 도서관에 간다고 해도 책을 읽으러 가는 게 아니라 구경하러 가는 것일 뿐이다. 아름다운 도서관은 책의 향기를 풍기고, 읽지도 않았는데 배를 불리운다. 우리나라에도 아름다운 도서관은 많다. 한옥으로 만들어진 청운문학도서관, 건물의 외관만으로도 유명한 은평구립도서관, 개인도서관인 이진아기념도서관, 사립도서관인 용인의 느티나무도서관. 책을 읽으러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도서관은 구경할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그래야만 한다. 책을 읽으러가지 않고 보러 간다한들, 그것 또한 괜찮은 일이 아니겠나.

‘존은 나이가 들면서 인간의 선함을 믿게 되었다.’

최근에 도서관에서 빌려다 본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이다. 나는 이런 평범한 문장들에 마음에 끌리는데, 이 단순하고 평범한 문장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을지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도대체 존은 어쩌다가 인간의 선함을 믿게 되었을까. 존에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던 것일까. 그런 궁금함들. 마거릿 애트우드의 ‘고양이눈’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가을은 천천히, 부드럽게 나이가 들어가는 계절이다. 겨울이 오고, 꼼짝없이 다시 한 해를 넘겨보내야 할 때가 오겠지만, 그 직전 가을은 풍성하고 부드럽게 세월을 감싸고 피로를 위로한다. 이야기들이 그 속에서 과일이나 곡식처럼 익어간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이가 들면서 무엇을 믿게 되었나, 궁금했다. 책을 읽지 않아도 했을 질문, 그러나 책을 읽으니 다시 한 번 깊어지는 질문이다.

그나저나, 가을에 독서를 가장 안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단다. 더워서 꼼작도 하기 싫은 여름, 추워서 밖에 돌아다닐 엄두 안나는 겨울, 황사 때문에 외출을 삼가는 봄이 실은 책 읽기에 더 좋은 계절이라는 뜻일 터이다. 그러나, 더 좋은 계절이란 게 어디 있겠나. 책이 쓰여지고, 만들어지고, 손닿는 곳에 있는 한, 그 모든 나날들이 책읽기에 좋은 날들이다. 그러기를 소망해본다.

<김인숙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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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