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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이라고? 난 경북이다.” 김제동이 경북 성주군 사드 배치 반대 집회에서 이렇게 촌철살인 하고 있을 때 나는 마침 그 옆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그 다음날 김제동에게 무슨 사달이 날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가 ‘종북’이라는 말을 놀려 먹었기 때문이다. ‘종북’은 보수세력이 가장 아끼는 칼이 아니던가? 그걸 희롱했으니 김제동은 화를 면치 못하리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장에 불려 나가지도 않았고, ‘종북’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치도곤을 당하지도 않았다. 적어도 그 말을 이유로 김제동을 혼내자는 움직임은 없었다. 그의 고향이 경북 영천시 고경면인지라, ‘난 경북이다’라는 말이 허위사실이 아니어서 문제가 되지 않았나?

‘종북’을 조롱한 것은, 김제동이 국방위원회에 불려 나갈 뻔한 사유가 됐던 ‘영창’ 발언보다 보수세력에게는 더 불손할 법도 했는데 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종북’이라는 말이 이미, 그리고 충분히, 조롱거리가 돼버렸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김제동의 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빨갱이’라는 말에 이어 나타난 ‘종북’이라는 딱지는 보수세력이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고립시키는 데 사용한 엄청난 폭력이었고, 그것의 위력은 대단했다. ‘종북’이라는 주홍글씨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 힘은 오래 가지 못했다. 보수세력이 이 딱지를 아무 곳에나 붙였기 때문이다. 종북이라는 말은 놀림거리가 됐다. 이를 풍자하는 ‘종북 놀이’까지 생겼을 정도였다.

‘종북 놀이’에 따르면, 보편적 복지를 주장해도, 재벌에 대한 특혜를 없애자고 해도, 세월호 가족을 응원해도, 반값 등록금을 주장해도,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해도,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고 해도, 이승만과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해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해도, 미국을 비판해도, 친일파를 척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도,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자고 해도 모조리 ‘종북’이라는 것이다.

이런 ‘종북 놀이’가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들은 ‘종북’ 딱지 붙이기의 허접스러움을 알아버렸다. 보수세력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찬성하지 않는 반대세력에게 ‘종북’ 딱지를 붙여 고립시켜왔다는 사실도 파악하게 됐다.

‘종북’이라는 개념의 모호성도 그것을 웃음거리로 만든 요인이다. ‘종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을 ‘종북’ 아닌 것과 어떻게 구별하는지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김제동이 ‘나는 경북이다’라고 ‘종북’을 놀려 먹어도 보수세력은 기분 나쁘지만 뭐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주부터 새누리당이 참여정부 외교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의 회고록 일부를 가지고 문재인에게 또 ‘종북’ 딱지를 붙이려고 하는 모양인데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에서는 유력한 야당 대선후보를 공격할 수 있는 좋은 빌미를 찾았다고 생각하는지 자극적인 말을 쏟아놓고 있다. 이정현 대표는 ‘종북’을 설명하기 위해 ‘내통’이라는 말을 꺼냈다. ‘내통’이란 말이 풍기는 음험하고 불손한 분위기를 이용해 야당을 곤경에 빠트리기로 궁리한 듯하다.

그러나 이 말은 오히려 새누리당의 입장을 구차하게 만들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체제 수립 과정을 북에 알린 사실, 그리고 이른바 총풍, 북풍 사건 등 북에 은밀한 부탁을 한 사실들은 보수세력이 야당을 공격하기 위해 들고나온 북과 ‘내통’했다는 말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박명재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종북’이라는 말을 더 자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종복(從僕)’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그에게 부메랑이 되고 있다. 그가 참여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까지 하고 등을 돌려 새누리당에 들어갔다는 행적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북방한계선 포기 발언’ 문제를 가지고 박근혜 정부가 집권 초기 황금 같은 시간을 허송세월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 말기를 또 그런 방식으로 보내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지난 정부의 정책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좋다. 잘못을 따지는 것도 좋다. 그런데 제발 ‘종북’ 따위의 색깔론, 딱지 붙이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종북’이란 개념의 외연과 내포가 분명치 않고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종북’이라는 말은 김제동으로부터 ‘종북이라고? 나는 경북이다’라고 놀림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쓸모없는 개념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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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