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세월호 참사는 한낱 참사로만 기억될 것인가. 수많은 아이들을 차가운 바닷물에 내버려두고 도망친 지 50일, 참사를 불러왔던 문제들이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구조적 비리를 캐겠다던 수사는 오리무중이고 유병언은 뒷북수사를 피해 도피 중이다. 국정조사는 파행 중이고 ‘관피아’ 논란은 여전하다. KBS 성원들의 파업에도 불구하고 공정방송의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쓰리고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자들은 또 있었다.

“가난한 집 애들이 (…) 왜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 천안함 사건 때는 국민이 조용하게 애도하며 지나갔는데, 이번에는 왜 시끄러운지 이해를 못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 흘릴 때 같이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백정이다.”

가난한 이들을 능멸한 망발의 주인공은 시정잡배, 또는 소수 신흥종교의 지도자가 아니다. 한국 최대 기독교 단체의 지도자다. 세월호 참사로 가슴을 치는 이들이 미개하다는 정치인 아들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며 망언 릴레이를 이어간 이도 그렇다. 강남 요지에 호화 교회를 신축하고 대학교수 신자만 헤아려도 800명이나 된다는 거대 교회의 담임 목사다. 문제는 기독교 지도자들의 이런 발언이 우연히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온갖 비난에도 이들이 망발을 이어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학교수를 포함한 교인들이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한사코 지지하며 추종하는 것이다.

이미 적잖은 그리스도인들조차 이 땅의 많은 교회에 예수가 없다는 것을 자인한다. 교회에서 전하는 복음은 왜곡됐고 예수의 가르침은 사라졌다. 성직자는 예수를 배반했고 그의 제자가 되기를 거부했다. 거대 교회일수록 예수를 담보로 교권의 아성을 쌓고 맹목적인 신앙만 부추긴다. 이런 교회에서 모시고 섬기는 것은 예수가 아니다. 돈과 권력이다.

알다시피 개신교는 마틴 루터가 교회의 면죄부 판매에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그런데 예수를 팔아 장사를 하는 것은 오늘날 이 땅의 수많은 교회도 한가지다. 목사, 평신도 할 것 없이 신앙은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고 교회 안에서 사랑과 나눔은 사라졌다. 목사들은 낮은 자리에서 섬기려 하기보다 높이 앉아 섬김을 받으려 든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두운 세상을 밝히기 위한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서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온전한 인간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교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무엇이 정말 중요하며,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함석헌 선생은 말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지 않으면, 공부하지 않으면 교회의 미래는 없다. 이 땅의 미래조차 암울해진다.


내가 공부하는 공동체 프랑스어 반에 최근 뜻밖의 사람이 찾아왔다. 신문기자로 일할 당시 취재차 만났던 신학자 김진 목사다. 국내 보수와 진보 신학교 모두에서 공부한 뒤 독일에서 학위를 받은 그가 서울 도심에 명상수련원을 꾸린 것은 10년 전. 개신교에는 명맥이 끊기다시피 한 수행 문화를 살려보기 위해서였다. 그 뒤 명상수련원을 떠나 인도의 아쉬람에서 기독교 공동체를 꾸렸던 그는, 그사이 더 깊어져 있었다.

그에 따르면 바른 기독교의 대안은 ‘예수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예수의’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예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예수가 어떤 분이었는지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선결돼야 한다. ‘예수의’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지녔던 믿음을 우리의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즉 예수에 대한 공부, 예수가 실천했던 수행이 필요하다. 김 목사를 만난 것을 계기로, 기독교 인문학 강좌와 기독교 명상수행을 기획한 이유다.

광의의 인문학을 기치로 출범한 뒤 공동체에서 공부해온 것은 철학이나 문화예술뿐 아니다. 좌선 수행과 함께하는 불교 경전, 유교의 사서(四書)와 노장 철학 공부도 공존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철학이든, 역사든, 종교든, 몸 공부든 모두 해보자는 것이다.

기독교 인문학 강좌에서는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도덕경, 장자 등을 통해서 기독교를 새롭게 들여다보는 한편, 초대 교부들이 그리스 철학의 전통과 어떻게 만났는지를 공부한다. 물론 여기에는 이 시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모색도 포함돼 있다.

신학자, 역사학자, 동양철학자 등이 두루 참여하는 이 강좌가 일단락되는 대로 김 박사가 10년 전 시작했던 기독교 명상 수행 모임을 재개한다. 수행 터는 불교의 좌선 수행과 유교 경전, 그리고 노장 철학을 공부하는 바로 그 좌식 방이다. 못난 인간들의 욕심 탓에 멀어진 예수와 부처와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한자리에서 어우러지게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대통령이 눈물 흘릴 때 가만히 있는 바람에 ‘백정’이 되어버린 이들이 온몸으로 밝혀 드는 작은 등불이기도 하다. 어려워도 희망의 끈, 놓아서는 안된다며….


김종락 |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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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