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대로 트럼프의 난폭한 통치가 시작되었다. 트럼프는 백악관으로 들어가자마자 뜸도 들이지 않고 곧장 이슬람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거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시켰다. 하지만 이 반문명적인 (혹은 심지어 반인륜적이라고 해야 할) 조치는 곧 미국의 한 연방법원이 위헌적이라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당분간 집행이 보류되었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공격적인 행동은 거침이 없다. 그는 자신의 행정명령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는 선거운동 중 공약한 것을 실천할 뿐이라고 큰소리치고 있다. 그리하여 멕시코와의 국경에 견고한 장벽을 설치하고, 오바마 정부에 의해서 중단되었던 대규모 송유관 건설의 재개 등등, 기습적인 조치들을 주저없이 감행하고 있다.

의회의 동의도 받지 않고, 모든 민주주의적 상식을 무시하면서 밀어붙이는 트럼프의 이 난폭한 행보 때문에 미국뿐만 아니라 온 세계의 양식 있는 사람들이 지금 기막혀 하고, 분노하고 있다.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전체 유권자 중 겨우 25%의 지지를 받았을 뿐인데도 트럼프는 자신의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돌아보지도 않고 폭군적 통치방식을 수정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취임한 지 한 달 만에 벌써 ‘탄핵’ 이야기가 나오고, 실제로 미국인들의 거의 절반이 탄핵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는 등, 실로 지금 미국은 아수라장이다.

그러나 냉정히 말하면, 당분간 트럼프가 탄핵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트럼프는 자신이 끊임없이 내세워온 ‘미국 제일주의’를 실행하기 위한 현실적 조치로, 미국에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자유무역협정들을 수정하거나 폐기할 태세이고, 해외로 이전했던 미국의 공장들의 본토 회귀를 강력히 종용하고, 외국 기업들이 미국에 중점적으로 투자할 것을 거의 협박조로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세계적 기업들은 트럼프의 요구를 따르기로 약속했다고 보도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지난 수십년간 ‘세계화 경제’의 흐름 속에서 생산기지들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빠져나감으로써 일자리를 잃었던 수많은 중하층 미국 시민들에게 당연히 많은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다. 게다가 트럼프는 지구사회의 가장 긴급한 현안, 즉 기후변화는 중국이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발목을 잡기 위해서 꾸며낸 음모적 허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화석연료의 대규모 개발과 사용에 거리낌이 있을 수 없다. 노스다코타주의 오래된 인디언 부족의 땅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높은 대규모 송유관 설치 공사의 재개를 백악관에 들어가자마자 승인한 것은 그 때문이다.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야 어떻게 되든, 미국인들에게, 특히 그동안 정치권력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하층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결국은 지속 불가능하다 해도) 그들의 생활수준을 높여준다면, 그리고 그게 트럼프의 공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트럼프는 탄핵을 당하기는커녕 그의 위세가 어쩌면 하늘을 찌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따져 보면, 유례없이 언행이 거칠기는 하지만, 트럼프가 추진하려는 것은 본질적으로 역대 미국의 주류 정치가들이 해왔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게 아니다.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쌓는 문제도 그렇다. 이미 1992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당시 클린턴 정부는 국경을 막기 위한 철조망을 설치했다. 클린턴은 ‘협정’이 발효되면 큰 타격을 입는 멕시코 농민들과 하층민들이 미국 땅으로 몰려올 것을 예견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트럼프가 하려는 것은 그러한 차단조치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역대 미국 정부는 어느 정권이든 국제사회에 책임감을 느끼기는커녕 기후변화를 막으려는 세계인들의 노력에 늘 찬물을 끼얹어 왔다. 그러다가 오바마 정부가 2015년 파리기후협정에 동참을 했으나, 미국이 약속대로 협정을 이행할지는 의문이었다. 그 상황에서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트럼프가 등장한 것이다. 요컨대, 트럼프는 전혀 새로운 것을 하려는 게 아니라 종래에 미국 정부가 하던 것을 노골적인 방식으로 거침없이 행하여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지금 세계의 언론들은 트럼프의 등장으로 미국이 파쇼국가로 되면서 세계를 나락으로 빠트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퍼뜨리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트럼프의 언행은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문명사회의 기본 규칙을 무시하고, 반지성주의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트럼프와 함께 ‘탈진실(post-truth) 시대의 정치’라는 말이 갑자기 유행하기 시작했다. ‘탈진실의 정치’란 거짓말이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지만, 그러나 정치가 거짓말로 오염되지 않은 때가 있었는가? 어쩌면 트럼프는 오랫동안 정치의 세계를 가리고 있던 위선적인 가면을 벗어던지고 있을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위선을 필요로 하는 정치와 위선을 벗어버린 정치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거짓말’과 ‘탈진실’이 다른 것만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거짓말’의 경우는 말하는 사람이 내심으로는 가책을 느끼지만, ‘탈진실’의 경우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니체식으로 말한다면, 사물은 해석하기 나름이고, 진실은 오직 ‘힘’이 만들어낸다는 생각이 ‘탈진실’ 시대의 정치 원리인 셈이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오늘날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의 정치는 ‘니힐리즘’에 지배되어 있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까지 나는 미국 얘기를 했지만, 물론 한국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참으로 지겹도록 오랫동안 거짓말이 난무하는 언어공간 속에서 살아왔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삶은 근원적으로 일그러지고, 흉물스러워졌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꺾이지 않는 정신이 살아 있었다는 것을 지금 우리는 경이롭게 확인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선거제도의 결함 탓도 있지만) 시대착오적인 파쇼적 정치지배를 선택한 것과 반대로, 우리는 주말마다 대규모로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만이 활로라는 ‘진리’를 세계를 향해 발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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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