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월요일 저녁 JTBC 신년토론을 유심히 보았다. 헌법재판소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진행되고, 전국의 광장에서는 사상 최대의 촛불데모가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가장 신뢰받는 언론으로 떠오른 방송사의 특별 프로그램이기도 했고, 또 예고된 출연자들에 대한 기대감도 컸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나는 지금 한국의 제도권 정치에서 이른바 양심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 측을 가장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것으로 보이는 두 사람, 즉 이재명과 유승민이 공개토론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매우 궁금했다.

알려진 대로 둘은 곧 닥칠 차기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올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그들이 과연 소속정당의 공식후보가 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지금 미지수이다. 그리고 그것은, 적어도 나 같은 사람에게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실제로 대통령이 되는 것과 관계없이 이미 꽤 시민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들이 지금 행하는 발언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신념과 생각은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여타 후보자들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기본적으로 ‘지도자’와 민중의 관계는 평등하다는 것을 늘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민주주의가 정착하기까지는, 아니 민주주의의 전성기에도, 지도자의 리더십이 관건적인 중요성을 갖는다는 것을 고대 그리스 이래 민주주의의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각하면 이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가령 대통령에 관해 말한다면, 제왕적 혹은 폭군적 대통령은 논외로 하고, 기본적으로 대통령(president)이란 원래 말뜻 그대로 ‘사회자’로서 역할을 하는(혹은 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회의에서든 회의의 성공과 실패는 거의 사회자가 좌우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마찬가지로 국가운영에서 사회자로서의 대통령의 능력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소소한 모임에서도 훌륭한 사회자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하물며 복잡하고 방대한 국가적 차원의 정책을 의논하고 결정하는 데 사회자 노릇을 제대로 한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정치지도자, 그중에서도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자질을 철저히 따져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날 방송토론은 결론적으로 낙제였다. 그렇게 된 것은 토론에 참석한 어떤 패널의 무례하고 난폭한 행동 탓도 있었지만,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진지한 토론이 막 시작된 순간, 즉 별 쓸모없는 지엽적인 말들이 어지럽게 교환된 끝에 비로소 쟁점다운 쟁점이 부각되었다고 생각되었을 때는, 이미 토론을 끝내야 할 시간이 돼버렸던 것이다.

내 생각에 그날 토론의 유일한 쟁점다운 쟁점은 유승민 의원이 이재명 시장에게 했던 질문에서 제기되었다. 즉, 유승민은 이재명이 강조하는 ‘경제적 정의’에 대해서는 자신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경제적 정의’는 ‘경제성장’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고 말하면서 새로운 경제성장의 방책에 대한 이재명의 복안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이재명의 대답은, 그가 다른 장소에서도 자주 말해왔듯이, 고른 분배를 해야 성장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재명뿐만 아니라 이른바 진보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는, 이재명이 그렇게 대답하기 전에 질문자에게 반문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유승민 당신의 경제성장에 대한 복안은 무엇인지 먼저 말해달라고 말이다. 만약 그렇게 물었다면 유승민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방송이 끝난 뒤 나는 계속 그게 궁금했다. 내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요컨대, 오늘날 한국의 합리적 보수파가 생각하는 경제성장 방안이 구체적으로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항용 보수파 정치가와 논객들은 경제성장이 중요하다는 말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도 그동안 그들이 집권하는 동안 실제 경제운용에서 합리적인(즉, 지속가능한) 성공을 거둔 바도 없고, 새로운 경제정책에 대한 구상에서도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놓은 적이, 내 기억으로는,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지금 한국을 포함하여 세계경제 전체가 왜 저성장 혹은 성장정지 상태로 되었는지에 대한 명쾌한 진단과 분석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 당연한 결과로, 이 상황에서 경제성장률을 어떤 식으로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인지 합리적인 방책이 나올 리 없다. 어쩌면 그들이 경제성장을 계속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그들의 경제성장 방안이 실제로는 매우 공허한 것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하기는 전혀 방책을 내놓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늘 기술혁신의 필요와 그것을 위한 집중적 투자와 지원, 기업하기 좋은 환경조성, 노사협조(실제로는 노동운동에 대한 억압), 무역확대 및 다변화, 공기업 민영화 등등을 운위하고 있지만, 이런 것들은 다른 나라들도 다 해왔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더 이상 효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난 방식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그런 방식 때문에 세계 전역에 걸쳐 경제적 불평등이 엄청나게 심화되고 절대다수 민중의 삶과 자연생태계가 철저히 망가져왔다는 사실을 완전히 간과하거나 무시하고 있다.

하기는 보수파뿐만 아니다. 이른바 진보진영도 ‘성장’이라는 개념 자체는 여전히 당연시하고 있다. 그러나 자원이 한정된 지구에서, 그것도 기후변화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쳐있는 상황에서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전제로 하는 경제성장을 한없이 계속한다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그리고 지금 대부분의 생산품은, 농산물을 제외하고는, 따져보면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이다. 그러한 쓰레기들 때문에 인간과 온갖 생물들이 서식하는 생존의 자연적 토대를 쉴 새 없이 무너뜨리고 있는 이 부조리한 현실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생태주의적 사고를 아직도 비현실적인 이상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럴수록 적어도 나라를 새롭게 이끌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근본적인 문제를 직시할 용기와 지혜는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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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