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3일 세계는 두 사람의 위대한 작가를 잃었다. 한 사람은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 다른 한 사람은 우루과이의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이들은 오랫동안 정열적으로 세계의 양심을 대변해온 이른바 ‘좌파 문학의 거장’으로서 세계 전역의 독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왔는데, 신기하게도 같은 날 타계했다. 그런데 한국의 언론에서는 귄터 그라스의 사망소식은 꽤 자세히 보도됐으나, 갈레아노의 소식은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고) 깜깜이었다. 이게 의도적인 결과인지, 혹은 무지나 무관심의 소치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내 편견인지 모르지만, 굳이 말하자면, ‘나치스’의 망령과 평생 싸웠던 그라스도 물론 중요하지만, 훨씬 우리의 주목을 끌어 마땅한 작가는 갈레아노이다. 왜냐하면 그는 오늘날 글로벌 자본의 압도적 지배 밑에서 자연과 인간이 철저히 파괴되고 짓눌리고 있는 (인류 전체의 사활이 걸려 있는) 세계적 위기상황에 정면으로 맞서 싸워온 작가 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선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갈레아노는 죽을 때까지 ‘현역’이었다. 그가 <수탈된 대지-라틴아메리카 500년사>라는 이제는 세계적 고전이 된 작품을 쓴 것은 28세 때였지만, 그때 못지않게 최근까지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왕성하게 문학 활동을 하고 있었다.

10년 전, 일본의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글로 인해 한국문단이 잠시 소란스러웠던 적이 있다. 그가 생각하는 ‘근대문학’의 핵심은 시대현실을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거기에 도전하는 저항정신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는 이 정신의 쇠퇴현상을 느끼고 있었는데, 한국에 와서 보고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한 것이다. 노골적인 상업주의는 아니라 해도 거의 자폐적 수준의 독백이나 자기현시적 욕망의 표출을 문학으로 오인하고 있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한국문단의 현실을 감안하면, 그의 발언은 경청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문인들의 반응은 대개 단세포적 ‘반발’을 넘어서지 못했고, 그 결과 생산적인 토론의 기회는 사라졌다.

되돌아보면,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마가 무익한 소동으로 끝나버린 것은 당시 가라타니 고진이나 한국문인들의 시야에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이 보이지 않았던 점도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아마 라틴아메리카는 동아시아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그곳은 오랜 세월 서구의 침탈과 군사독재로 억압돼온 ‘후진지역’이라는 선입관 때문에 주목해 볼 생각을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가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면서) ‘좋은 삶’을 위한 세계적인 해방투쟁의 선두에 선 지도 이미 20여년이 지났다. 우리가 이 새로운 역사적인 흐름을 몰랐다면, 그것은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적 편견에 갇혀 지낸 탓도 있지만, 매사를 미국과 유럽인의 눈을 빌려 보는 데 익숙해진 탓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재작년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의 사망소식을 전하면서 한국의 언론들이 태연히 그를 ‘독재자’로 불렀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차베스뿐만 아니다. 신대륙 500년사에서 처음 원주민 출신이 대통령이 된 볼리비아나 진보적 경제학자 출신이 국가를 이끌고 있는 에콰도르는 다함께 세계 최초로 ‘자연의 권리’를 명시한 신헌법을 제정해 종래의 서구식 ‘인권개념’을 확장·심화함으로써 생태적 보존과 토착민의 삶을 포괄하는 보다 실질적인 인권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브라질에서도 노동자 출신 대통령의 등장을 전후로 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다각적 실험들이 시도돼 왔고, 우루과이에서는 좌익 게릴라 출신의 철저한 공화주의자 대통령이 다수 국민의 절대적인 존경과 지지 속에서 최근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또, 지금 세계 제일의 ‘지속가능한 국가’로 평가받는 ‘군대 없는 나라’ 코스타리카도 주목에 값하는 나라이다. 물론 쿠바도 빼놓을 수 없다. 쿠바는 물론 공산당 독재 치하의 가난한 나라이다. 하지만 결코 간과하면 안될 것은 세계의 가장 어려운 지역에 가장 긴요한 도움, 즉 의료진이나 교사들을 아낌없이 파견해 지원해온 나라가 미국도 유럽 국가도 아니고 쿠바라는 점이다.

중남미 4개국을 순방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오후(현지시간)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 볼리바르 기념관을 방문, 라틴 아메리카 국가의 독립영웅인 시몬 볼리바르 장군 동상에 헌화한 뒤 걸어나오고 있다. (출처 : 경향DB)


어쨌든 지금 라틴아메리카는 (물론 예외는 있지만) 여러 모로 세계의 가장 선진적인 지역이 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엄청난 혁명적 변화 과정에서 막중한 역할을 해온 것이 시와 문학, 예술이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차베스를 비롯한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의 개혁정치가들과 그들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지식대중 중에 갈레아노의 글과 책을 읽지 않고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삼엄한 군사독재하에서 갈레아노가 쓴 ‘금서’를 숨을 죽인 채 읽었고, 해외로 빠져나갈 때는 ‘갓난아기의 기저귀 속에’ 숨겨서라도 책을 가지고 나갔다.

갈레아노는 원래 저널리즘에서 출발한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에게 문학과 정치, 그리고 역사는 별개가 아니었다. 어떤 점에서 <수탈된 대지>는 파블로 네루다의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하워드 진의 민중적 역사관을 결합한 문학-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문학이란 야만적인 지배와 수탈과 폭력 밑에서 짓눌리고 억압돼온 자들이 ‘자유인’으로서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 즉 근원적인 의미의 ‘정치적’ 활동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갈레아노의 스타일은 비인간적인 체제나 기득권 세력의 탐욕과 폭력적 지배를 소리 높여 규탄하는 게 아니었다. 그의 문학은 비참한 역사와 현실을 묘사할 때도 늘 풍부한 민중적 감수성에 뿌리를 둔 ‘이야기’의 형태로 전달되고, 그 이야기들은 예리한 아포리즘, 해학과 위트, 시적 환상과 뒤섞여 있다. 그 때문에 픽션도 아니고 논픽션도 아닌 그의 작품에서 독자들은 완전히 현실을 새롭게 발견하는 신선한 충격을 경험한다.

그는 민중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이야기’의 힘 때문이라고 믿었다. 인간의 세포조직은 분자가 아니라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고 그는 즐겨 말했다. 갈레아노는 좌파 지식인들에게서 흔히 보는 ‘납처럼’ 무거운 언어를 싫어했다.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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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