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독일에서 공부한 탓인지 서유럽 정치에 관심이 적지 않다. 당장 3월4일 치러질 이탈리아 총선에서 우파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五星)운동’이 집권에 성공할 것인지를 눈여겨보고 있다. 최근 오성운동은 30%에 육박하는, 단일 정당으론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오성운동이 다른 정당과의 연대를 거부하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선 우파 연립정부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주목할 것은 포퓰리즘이 2008년 금융위기라는 ‘대침체’ 이후 서구 정치변동을 이끌어온 핵심 동력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과 ‘샌더스 현상’, 프랑스의 ‘국민전선’과 ‘전진하는 공화국’,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 영국의 ‘독립당’,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덴마크의 ‘국민당’, 노르웨이의 ‘진보당’, 그리스의 ‘시리자’, 그리고 스페인의 ‘포데모스’에 이르기까지 포퓰리즘이 서구 정치사회는 물론 시민사회를 뒤흔들어 왔다.

포퓰리즘을 특징짓는 현상은 두 가지다. 첫째, ‘엘리트 대 국민’이라는 균열을 부각시킨다. 포퓰리스트들에게 엘리트란 기득권의 다른 이름이다. 정치의 일차적 목표는 엘리트 기득권에 맞서서 국민주권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이들은 역설한다. 대중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논리보다 감성에 의존하고, 민중이 정치의 주인임을 강조하기 위해 인민주권을 내세우는 게 포퓰리즘의 핵심이다.

둘째, 이념 구도를 망라한다. 트럼프 현상이 우파 버전이라면, 포데모스는 좌파 버전이고, 전진하는 공화국은 중도 버전이다. 흥미로운 것은 우파 포퓰리즘과 좌파 포퓰리즘의 차이다. 두 포퓰리즘은 모두 엘리트 대 국민의 적대를 정치의 핵심으로 한다. 그런데 우파 포퓰리즘은 이 적대에 국민 안에서의 ‘내집단 대 외집단’의 적대를 더한다. 저널니스트 존 주디스에 따르면, 외집단이란 이민자·난민·이슬람교도 등을 지칭한다.

서구에서 포퓰리즘이 급부상한 데에는 세 요인이 중요하다. 첫째, 불평등의 구조화다. 금융위기 이후 우파든 좌파든 기성 정치사회는 불평등의 해소에 대체로 무능했다. 둘째, 세계화의 증대다. 세계화 시대가 열리면서 호황의 국면에선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관용이 높았지만, 대침체 이후 이민과 난민 정책이 예민한 정치 쟁점으로 부상했다. 셋째, 정보사회의 진전이다. 적잖은 국민은 신문·방송의 기성 공론장을 패스해 페이스북·트위터 등 SNS를 통한 정치사회와의 직거래를 활성화시켰다.

요컨대, 불평등, 세계화, 정보사회가 가져온 전환기의 불확실성은 문제 해결에 무력한 기성 정치사회에 대한 실망과 거부를 낳았고, 바로 이 실망과 거부의 공간이 포퓰리즘의 서식처를 이뤘다. 정치학자 에르네스토 라클라우가 통찰했듯, 포퓰리즘 정당은 기존 계급·이념의 균열을 넘어서 엘리트 대 국민이라는 새로운 적대를 창출했다. 그리고 다양한 사회 집단들을 ‘하나의 국민’이란 이름으로 호명하여 결집시킨다. 포퓰리즘 정치에는 이렇듯 소외되고 배제된 국민들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정체성의 정치’가 도사리고 있다.

트럼프 정부와 시리자 정부가 보여주듯 포퓰리즘의 득세가 정부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우파 포퓰리즘이 내세우는 이·난민 문제나 좌파 포퓰리즘이 주력하는 불평등 해소는 쉬운 과제들이 아니다. 정책의 선택은 세계화된 자본주의로부터 가해지는 구조적 강제와 정부 정책을 구속해온 경로의존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국민들은 기득권 세력을 공격하는 포퓰리스트들에 열광하지만, 그 열광은 이내 환멸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한계가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포퓰리즘이 번성하는 이유는 뭘까. 그 까닭은 무엇보다 기성 정치사회의 역량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낮다는 데 있다. 적잖은 국민이 관료화된 기성 정치가 국민 전체의 가치와 이익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믿는 한, 포퓰리즘은 제3의 새로운 정치적 대안으로 계속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포퓰리즘은 정책적 측면에서 ‘대중영합주의’를 함의한다. 주목할 것은 정치적 측면에서 포퓰리즘의 의미와 효과다. 포퓰리즘은 인민주권의 회복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한 식솔이다. 그러나 동시에 제도정치를 무력화시킨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불편한 친구다. 서구에서 1929년 대공황 이후 복지국가가 등장했듯, 2008년 대침체 이후 포퓰리즘이 부상한 것은 서구 정치가 새로운 시대로 가는 문턱에 올라서 있음을, ‘이념 시대’에서 ‘포퓰리즘 시대’로 전환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징표일 수 있다. 서구 정치변동에 대한 또 하나의 이해를 위해 이 칼럼을 썼음을 밝힌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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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