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의 위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 상품 생산자들은 자신이 만든 상품(대상)에 대한 인간의 관심(어텐션)을 얻으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어텐션 이코노미’의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책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책이라 할지라도 책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책은 곧 독자의 관심에서 벗어나게 마련입니다. 즉 콘텍스트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소셜미디어는 ‘공감의 장치’입니다. 가슴이 통하는 이들이 함께 활동하는 소셜미디어 공간 속의 커뮤니티를 통해 콘텐츠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확실한 콘텍스트를 만들어내면 소비자(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올해 콘텍스트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것은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을 수상한 <채식주의자>(한강)의 인기와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 페미니즘 도서의 판매가 급증한 사례일 것입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특히 ‘강남역 살인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 담론이 다시 득세하게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살인사건이 ‘여성혐오’인가 아닌가에 대해 논란을 벌인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성우가 여성주의 커뮤니티인 메갈리아에서 구입한 2만원짜리 티셔츠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갔습니다. 한 평론가는 방송에 출연해 이제야말로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이 진정으로 만개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메갈리아는 여성억압적인 한국 사회의 진면목을 드러내기 위해 ‘미러링’이라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남성들의 일상적인 여성혐오 표현을 그대로 패러디해 거울처럼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남성 일반에 대한 미러링으로 출발한 메갈리아는 점차 장애인, 성소수자, 아동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발언으로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일부 행위에 대한 비판이 없지 않았지만 이런 노력들이 세를 얻어가는 가운데 ‘강남역 살인사건’이 불을 붙이는 바람에 페미니즘 담론이 크게 폭발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자다운 게 어딨어>(창비)는 영국 지상파 채널인 ITV의 <디스 모닝>에 출연해 18개월 동안 제모하지 않은 겨드랑이를 당당히 뽐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페미니스트 에머 오툴이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미러링’하면서 “생물학적 성에 적합한 성역할 바깥에서 행동할”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가를 일깨워주는 책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낭만적 사랑과 성적 욕망”에 대해 가상토론을 벌이기도 하는 저자는 남장, 삭발, 제모 거부, 동성애, 남녀공통의 일상언어 쓰기 등 ‘여자다움’이라는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유쾌하고 도발적인 실험을 감행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하루는 여성스러운 외양으로 다음날은 남성스러운 외양으로 출근하면서, 나는 젠더가 의상일 따름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남성적이든 여성적이든 똑같이 대우해달라고 요구한다. 털이 난 다리를 내보임으로써 나는 여성의 체모만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이 성차별적이라고 말한다. 삭발한 머리로써 나는 이것이 어째서 여자가 아닌 남자만의 헤어스타일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월요일에 화장을 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내 얼굴을 꾸미는 걸 좋아한다고 말한다. 나는 내가 입는 의상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이해하며, 그것이 해석되는 방식까지는 통제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전하고자 하는 젠더와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시도한다.”

결혼에 대해 “자신이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대단히 기이하고 궁극적으로 불친절한 행위”일 뿐이라는 정의를 제시하는 알랭 드 보통의 장편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행나무)은 원제가 ‘The Course of Love’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궁극적인 사랑과 가족의 의미를 캐묻고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첫눈에 반합니다. 그러니 키스와 섹스, 결혼까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물건을 사러 처음으로 함께 갔다가 다툰 이후 두 사람은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됩니다.

“겉으로는 편리하게도 단일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그 밑에 수많은 진전, 단절, 재협상, 소원한 기간, 감정적 회귀가 깔려 있어 사실상 그는 적어도 열두 번은 이혼과 재혼을 겪”다가 결혼한 지 16년이 지나서야 드디어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낍니다. 그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의 완벽함을 포기했고,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되기를 단념했고, 자신이 미쳤음을 자각했고, 아내가 까다로운 것이 아님을 이해했고, 사랑을 받기보다 베풀 준비가 되었고, 항상 섹스는 사랑과 불편하게 동거하리라는 것을 이해했고, 서로 잘 맞지 않는다고 가슴 깊이 인식했고, 대부분의 러브스토리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작가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려면 열정이 아니라 사랑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이런 가족이 과연 필요할까요?

지금 방영되고 있는 tvN의 다큐멘터리 <판타스틱 패밀리>(4부작)에서는 로봇도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2편 ‘신상가족’에서는 1인가구, 부부이면서 따로 사는 LAT(Living Apart Together) 가족, 90대의 스승과 60대의 제자가 모녀처럼 사는 가족,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셰어하우스 등을 제시했습니다. 어쩌면 가족과 사랑이라는 개념을 넘어서서 이제 인간 정체성 자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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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