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것없는 나의 몸도 나에겐 대륙이다. 좁다면 좁겠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참 많았다. 물론 모르는 게 더 압도적이다. 넓다면 또한 얼마나 넓은 곳이더냐. 나에게 속한 곳이라지만 아직도 못 본 구석이 너무 많다. 나는 여태껏 나의 전모를 한꺼번에 직접 본 적이 없다.

한 해가 교차하는 날에 지붕 아래 맥없이 앉아 있자니 왠지 억울한 생각이 일어났다. 사무실 뒤 심학산으로 갔다. 정유년의 마지막 햇살이 기울고 있었다. 때가 때이니 만큼 약천사의 저녁 종소리를 듣느라 조금 우회했다. 해넘이를 하러 온 사람들로 꼭대기가 빼곡했다. 사람들 뒤통수 사이로 지는 해를 간신히 볼 수 있었다. 산은 늘 좋다. 도시에서는 지금 걷고 있는 길도 행인들의 발길에 묻히기 마련이다. 산에서는 오전에 걸었던 길이 오후에도 보인다. 산에 가끔 가는 게 아니라 산에서 가끔 내려오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싶었다. 아직은 그게 잘 안된다. 언젠가 나도 산에서 사는 날이 올까. 그땐 저 나무들도 진짜 식구처럼 여겨질까.

울산에 사는 친구가 근사한 연하장을 카톡에 올렸다. 하늘을 배경으로 찍은 감나무와 짧은 신년사였다. 가끔 하늘도 보고 살자. 말도 사진도 작품이었다. 작심삼일이라고 할 때의 3일은 제법 긴 시간이다. 조금이라도 짙은 하늘도 볼 겸 심학산에 다시 올랐다. 해 바뀌고 사흘 만에 가는 무술년 첫 산행.

해가 완전히 넘어가자 시선이 짧아졌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어둑해지면 나무들은 웅크린 짐승처럼 변한다. 소나무, 신갈나무 사이로 노간주나무가 서 있다. 말쑥하게 커서 차렷한 모범생 같다. 바늘처럼 뾰쪽한 잎에 찔리면 따끔따끔 아프다. 콩알만 한 열매가 다닥다닥 달렸다. 재질이 단단하면서도 삶으면 말을 잘 들어서 코뚜레로 쓰였다는 노간주나무. 큰길로 내려서자 하늘이 꺼진 뒤 ‘쬐끄만’ 등들이 켜졌다. 간판 아래 손님들이 불판에 둘러앉아 있다. 소는 고기가 되고나서야 코뚜레를 벗어날 수 있었겠지. 모가지에 퉁소를 장착한 듯 새들이 크게 울며 날아갔다. 노간주나무, 측백나무과의 상록 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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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