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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 실세 국정농단의 몸통은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정치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없다. 법적으로만 간신히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는 본인만 이 현실을 거부하고 있다. 대통령이 불법과 비리를 지속적으로 저질러온 정황이 명백히 드러났으니, 그동안 온갖 의혹과 반대에도 대통령이 앞장서 밀어붙였던 정책들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문제의 정책들은 이전과 변함없이, 아니 더욱 신속히 진행되는 것 같다.

교육부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예정대로 28일에 공개하겠다고 한다. 국정화 추진은 학생과 교사, 대부분의 역사학자를 비롯한 수많은 국민의 분노와 저항을 불러일으켰던 사안이다. 그리고 국정화의 선봉에는 대통령이 있었다.

지난해 12월 일본군 위안부 밀실·굴욕 협상은 외교부 장관이 반대했지만 대통령이 밀어붙인 정황이 드러났다.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 충분한 개연성이 있지만, 외교부 당국자는 사실무근이라며 시치미를 뗀다. 여성가족부는 반성과 사과가 먼저라는 비판은 외면하고 피해 할머니들에게 위로금 지급만 서두른다. 환경부는 강원 양양군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환경영향평가서를 통과시켰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국정감사에서 반려하라는 결론을 내린 조작·부실 평가서였다. 국회의원, 양양군,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공동 현장검증을 실시한 지 이틀 만이었다. 설악산 케이블카는 사업신청서가 제출되기도 전에 대통령이 두 번씩이나 적극 추진을 지시했다.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현웅 법무부 장관의 사의 표명이 알려지고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탄핵 주도를 선언한 23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 뒤편으로 청와대 본관 건물이 보이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여건 조성이 우선이라는 입장에서 돌변해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 재가, 양국 서명을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 지난 이명박 정부 때도 밀실협상 논란으로 막판에 무산됐던 사안이다. 대통령이 진두지휘했던 갑작스러운 ‘사드’ 배치 결정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만큼 격렬한 반발과 분노를 샀다. 하지만 국방부는 롯데의 경북 성주골프장과 경기 남양주의 국유지를 맞바꾸면서 사드의 조기 배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21일 검찰은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의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징역 8년을 구형했다. 1심 형량인 징역 5년이 너무 가볍다는 것이다. 작년 민중총궐기의 근원이었던 박근혜 정권 폭정의 실태가 훤히 드러난 지금도 검찰의 현실 인식은 여전하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프리모 레비의 말이 떠오른다. “괴물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중략)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의문을 품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기계적 인간들 말이다.”(홍세화, <생각의 좌표>) 눈에 띄는 괴물이라면 맞서 싸울 수는 있다. 하지만 괴물을 무조건 추종하는, 눈에 띄지 않는 수많은 ‘기계적 인간들’과 일일이 싸울 수는 없다. 이런 절망적 현실 때문에 지옥에서도 살아남았던 레비가 노년에 자살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 현실도 썩 달라 보이지 않는다. 괴물을 따르는 평범한 사람들이 땅에서 갑자기 솟아날 리 없다. 이들도 결국 교육의 결과다. 대입과 취업이 지상 목표가 되어버린 교육 현실에서, 아이들은 자기 생각이 아니라 주어진 문제의 ‘정답’을 맞히는 능력을 키우도록 강요된다. 자율적·비판적 사고 능력은 퇴화되고, 지시받은 업무를 충실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실무형’ 인간이 만들어진다. 자기가 노예이면서도 노예인지 모르는 인간 말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요즘 광장에서 만나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은 참으로 놀랍고, 반갑고, 고맙다. 무엇보다 미안하다. 이제는 정말 학교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부패한 권력일수록 학교 교육을 통제해 아이들을 기존의 현실에 순응하는 ‘기계적 인간들’로 키우려 한다. 자유롭고 비판적 사고의 숨통을 옥죄는 학교, 영혼을 없애는 교육에 우리 아이들을 더 이상 맡겨 놓을 수는 없다. 광장에서 아이들이 보여준 놀라운 가능성을 직접 만나고 돌아올 때마다 드는 간절한 바람이다.

조현철 서강대 교수·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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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