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이랑에 씨 뿌려 가꾸는 나는

구름작목반 농부

호박 같은 구름 한 덩이 꿈 밖으로

궁굴려 나오는 궁리 중이다

 

눈 쌓인 논배미 아래 낮은 언덕길을

빵모자를 쓴 사람이 걸어간다

머리만 보인다

보는 사람 없는 이 틈에 공이나 굴려볼까

제 머리를 공 굴리듯 굴리고 간다

털실뭉치가 언덕을 굴러가는데

눈 하나 묻지 않는다

 

저 이는

햇빛과 바람과 하늘의 물꼬를 터

공중에 빚어 거는

호박작목반 농부다

 

누가 이 엄동에 추수를 하나

실한 알곡들

또다시 함박눈 내린다

 - 이선식(1954~ )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하늘에 밭을 갈고 물알갱이를 심어 구름을 가꾸고 탐스러운 눈을 수확하는 ‘구름작목반 농부’를 상상해 본다. 시인은 비행기 창 너머로 광활하고 풍성한 구름밭을 보면서 게을러도 수확은 늘 풍성한 이 구름 농사 사업을 구상하지 않았을까. 쓸데없는 상상만 해도 구름 농사는 풍년일 테고 한가로이 빈둥거려도 함박눈 수확은 넘칠 테니, 하, 과연 시인이 할 만한 노동이로다.

금년 겨울은 미세 먼지는 많고 눈은 적게 내리니 겨울 기분이 덜 나는 것 같다. 아이들처럼 동네 강아지들처럼 저절로 발이 깡충깡충 뛰어오르는 기분으로 함박눈을 맞고 싶다. 시인의 몽상과 상상력으로 빚은 눈, 좌절과 실망을 즐거운 유희로 바꾸는 연금술로 빚은 눈이라면 좋겠다. 구름을 일구고 함박눈을 거두는 농사는 돈은 안되지만 꿈은 노다지 아닌가.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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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