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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대토(守株待兎). 누가 봐도 우스꽝스러운 바보 이야기를 들어서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옛 법을 고수하는 것을 비판하는 성어다.

한비자가 이 이야기를 꺼내며 겨냥한 대상은, 입만 열면 요순시대를 들먹이며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상적인 말만 하는 유가 지식인들이었다. 약육강식의 치열한 국가 간 경쟁이 극단적으로 펼쳐지던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그 옛날 성군의 교화정치를 주장한 맹자는 그 전형 가운데 하나다. 눈앞에서 온갖 불의와 무도함이 자행되는데 그래도 사람의 성품은 누구나 선하다고 외치고, 전쟁에 패해 땅을 빼앗긴 군주에게 정치는 땅으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려 드니, 말이 먹힐 리가 없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런데 이런 맹자를 마냥 비웃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왕 앞에서 한 치도 굽히지 않고 서슬 퍼런 비판의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는 그의 열정이다. 자신의 말이 먹히지 않고 있음을 알면서도 타협은커녕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돌진하는 그 열정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 근본 동력은, 굶주림과 전쟁으로 버려지고 나뒹구는, 어디 호소할 데조차 없는 백성들, 눈에 밟히는 그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이었다. 적어도 맹자가 보기에 정치란, 그 아픔들에 함께 눈물 흘리는 데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새 정부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일들 하나하나가 감동으로 회자되는 것을 보며 그사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망가져버렸는지, 누군가가 내걸었던 말인 ‘비정상의 정상화’가 실로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하지만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산적한 문제들이 다 해결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기에는 우리 앞의 현실이 너무나 어렵다. 경제, 외교, 안보, 교육, 복지, 환경 어느 것 하나 쉽게 해법을 찾을 수 있는 분야가 없다. 더구나 지지자와 비지지자를 막론하고 그 다양한 이들의 바람과 훈수를 충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정말이지 갈 길이 참 험하고 멀다.

그러나 새 대통령의 공식적인 첫 행보가 세월호 유가족과의 만남이었다는 데에서 희망을 본다. 스승의날, 단원고 기간제 교사들의 순직 처리를 지시하고 대통령이 직접 그 가족과 통화하여 위로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흐른다. 울분과 원한의 눈물을 공감과 위로의 눈물로 바꾸는 데에서, 정치는 시작된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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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