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여관집 현관에 전시되어 있던 눈썰매를 보고 감탄. 대물림을 할 정도로 짱짱한 물건이었다. 집집마다 이젠 스노 모빌 눈썰매가 있지만 과거엔 모두 아버지들이 나무를 깎아 만든 눈썰매를 탔단다. “겨울 나라에서 살려면 기술이 좋아야 해요. 썰매 하나를 만들어도 설렁설렁 대충 이어 붙여서는 곤란합니다. 눈길에 갇히면 얼어 죽죠. 모든 게 목숨과 관계되어 있으니까요” 여관집 아저씨는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눈썰매도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만주땅 봉천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던 내 아버지도 얼음 썰매를 곧잘 만드셨다. 그곳에서 배우신 걸까. 꽁꽁 언 냇가에 나가면 내 썰매가 가장 앞서나갔다. 엊그제부터 남쪽은 폭설이다. 냇물도 두껍게 얼었다. 방문 창으로 쏟아지는 눈보라가 최면을 거는 마술사의 무엇처럼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마을에서 쫓겨난 한센인들은 짓무른 코로 눈발이 들어갈까 가마니 자루를 뒤집어쓰고서 이 서러운 남도 땅을 돌아다녔다. 갑오년 농민들과 동란 때 빨치산들은 또 얼마나 추운 산하를 떠돌며 울었을까.

남녘 목사로 지낼 때였다. 한 해 겨울은 젊은 축에 끼던 부부가 새해를 맞아 교회를 다니지 않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목사가 공산당에다가 성경을 믿지 않는다는 괴소문. 미국의 ‘이슬람 대결 전쟁’을 반대한다고 설교를 한 다음주 일이었다. 시골에선 미국의 뜻에 반대하면 무조건 공산당이었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는데 집엘 찾아갔다. 이번주부터 읍내 큰 교회에 다니기로 했다고.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 돌아가시라 문전박대. 그런데 대문 앞 눈길이 얼어 그만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목사님 따라서 살다가는 그라고 재수 없을 거 같아 그만뒀당게라잉.” 내가 잘못 들었나 재차 물었더니 딸깍 문을 닫아걸었다. 나는 접질린 발목을 질질 끌고 도망치듯 그 골목에서 빠져나왔다. 동구 밖 교회로 돌아오는 눈길은 그날따라 배로 멀었다. 눈썰매를 타고 싱싱 달리고 싶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란 참으로 괴로움이었다. 하지만 별수 있나. 사람 말고 또 누가 있어 이 추위에 온기를 나누며 살아갈 것인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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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