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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5일장을 사랑한다. 5일장을 도는 장돌뱅이 상인들이 익숙한 솜씨로 좌판을 펼치고, 인근 마을에서 보퉁이를 이고 지고 찾아온 할머니들이 갓 캔 푸성귀들을 펼치며 하나둘씩 자리를 잡는 곳. 계절을 반영하는 제철 생선이며 채소를 마트보다 싼값에 살 수 있다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손바닥만 한 좌판을 놓고 옹기종기 앉아 있는 시골 ‘할매’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그 특유의 정서 때문에도 자주 가고 싶어진다.

개인적으로 애용하는 장은 5일, 10일에 열리는 평창장. 즉석에서 들기름에 구워내는 김을 사기 위해서도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가게 되는 곳이다. 김을 사고 나면 대관령 황태를 산다. 강추위와 눈 속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만들어진 대관령 황태는 부드럽고 노란 속살에 양념을 발라 구워 먹어야 제일 맛있지만 대개는 황태채를 산다. 황태북엇국, 황태칼국수, 황태골뱅이소면 등 여러모로 쓸모가 많기 때문이다. 북유럽 디자인이 부럽지 않은 예쁜 뜨개 버선도 두 켤레 산다. 그래봐야 만원도 안되기 때문에 한 켤레 더 살까 고민하며 둘러보니 ‘몸뻬’ 파는 할아버지는 오늘도 장사는 뒷전이고 장기에 빠져 있다. 그러다 살짝 배가 고파지면 경이로울 정도로 얇게 부친 메밀전이나 김치를 넣은 메밀전병을 사먹는다.

며칠 전에는 1일과 6일에 열리는 횡성장에 다녀왔다. 오, 여기는 평창장보다 규모가 더 크고 다채롭다. 장옥 내 전문 장사꾼의 가게가 많은 장보다 인근 농촌에서 나물이나 채소를 들고나온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주로 난전을 펼치는 장을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는데 여기는 그 두 종류의 장이 적절히 섞여 있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매던 작약을 살 수 있어 좋았다. 손두부도 겨우 2000원. 하나로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두 배나 많아 보이는 싱싱한 파도 한 단 샀다. 한 바구니에 5000원 하는 토마토는 어찌나 싱싱한지 그 자리에서 바지에 쓱쓱 닦아 단숨에 먹어버리고 말았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문화관광형으로 개선된 정선장이나 봉평장보다 현지인 중심의 생활용 5일장인 평창장이나 횡성장을 더 선호한다. 그러나 평창에도, 횡성에도 미안하지만 강원도 최고의 5일장으로 꼽는 곳은 따로 있다.

5일장_경향DB


동해시에 위치한 200년 전통의 5일장, 북평장. 지금과 같은 방식의 3일, 8일장이 열리게 된 것이 1796년 정조 때부터라고 하니 어지간한 문화유산 못지않은 셈이다. 물론 단지 오래됐다고 무턱대고 최고 점수를 주진 않는다. 이 시장의 매력에 대해서 물으면 난 늘 이렇게 말한다.

“자전거만 한 문어가 꿈틀대며 수족관이나 빨간 ‘다라’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참문어가 즉석에서 삶아지는 대형 어물전 옆에서 촌로가 작은 소쿠리 몇 개를 앞에 두고 냉이며 쑥을 팔고 있는 모습도 정겹고. 어물 따로, 청과 따로 구획별로 정리가 안됐다는 점이 오히려 이 시장의 매력이랄까? 게다가 소머리국밥이 얼마나 맛있고 푸짐한지 말도 못해.”

북평장은 예전부터 우시장으로 유명했다. 덕분에 소머리국밥 잘하는 식당도 많았다. 우시장은 사라졌지만 우시장이 사라진 뒤에도 그 맛을 유지하는 집들이 아직까지 건재하게 영업을 하고 있어서 반갑다. 그중 제일 유명한 집에 갔다.

가마솥에서는 모락모락 김을 올리며 국을 끓이고 있는 ‘43년 전통’의 모 식당. 그곳에서 퍼지는 구수한 냄새가 마치 자석인 듯 우리를 끌어당겼다. 역시 그 맛이 그윽했다. 국물에서 느끼한 맛이 하나도 안 나면서도 아주 깊은 맛이 났다. 고기는 입안에서 스르르 녹을 정도로 부드럽고 양도 엄청 많았다. 대를 이어 국밥을 끓이고 있는 여사장에게 ‘맛의 비결’을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냥 어머니 말씀대로 하는 거죠. 첫째, 식재료 외상 달지 말아라, 그래야 좋은 물건 들인다. 둘째, 냉장고는 늘 채워 놓아라, 그래야 손이 커진다.”

‘좋은 식재료를 아낌없이 푸짐하게 내주어라’ 하지 않고, 저절로 실천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고안하셨다니 더욱더 감탄사가 나왔다.

“와, 그 어머니 굉장한 분이셨네요. 장사의 여신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시마다 마사히코는 <퇴폐예찬>이라는 책에서 ‘시장에서 살고 싶다’며 이렇게 썼다. “다녀왔습니다, 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그리운 장소로 돌아온 느낌이다.” 그게 바로 시골 5일장의 느낌이다. 우리 삶의 근원에 다가가 서로 냄새 맡고 만져보고 어깨를 부딪치는 듯한 정겹고 애틋한 느낌.

봄나들이하기 좋은 날들이다. 바다 냄새 나는 북평장에 가서 참문어님과 ‘장사의 여신들’에게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다녀왔습니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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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