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울적할 때 논어를 읽는다. 최근에는 집중해서 필사도 하였다. 쌀가마니를 기웃거리는 쥐처럼 손에 잡았다가 갉작거리기만 했던 게 여러 번이었다. 그러던 차에 어떤 깊은 자극을 받아 작심을 하고 덤벼들었던 것. 논어의 끝문장은 “不知言 無以知人也.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지 못한다”이다. 왜 말로 마무리를 했을까. 붓을 놓고 ‘言’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네모난 돌 위에 솔잎을 쌓아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험한 한자. 문득 말의 바탕 위에서 늘 살아가면서도 이 글자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옥편을 뒤졌다. 이런 설명이 나왔다. “날카로운 칼과 口가 합친 것. 칼로 까칠까칠하게 만들 듯 하나하나 확실하게 발음되는 게 말이라는 뜻.”

대학을 갔는데 출석부는 이름의 가나다순이었다. 조상이 순서를 정해준 셈이다. 자연스레 같은 실험조가 되면서 가깝게 지낸 친구들이 있다. 성만 표기해 본다. <李, 全, 鄭1, 鄭2, 崔>. 이곳저곳에서 흩어져 살다가 중간지대인 예천에서 모처럼 모였다. 이름과 목소리는 그대로인데 얼굴은 조금씩 변했다. 다음날 全과 鄭1은 먼저 떠나고 李, 鄭2, 崔는 치악산 아래 원주의 박경리문학공원을 둘러보았다. ‘작가는 치열하게 언어를 찾는 존재입니다.’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하여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군데군데 배치된 작가의 말을 읽으며 돌아다니는데 맞춤하게 돌담길에 ‘눈먼 말’이라는 시가 눈에 번쩍 뜨였다. 자연스레 논어의 마지막 구절이 떠올랐다. 내용을 보니 말(言)이 아니라 말(馬)이었다. 시를 소개하는 입간판 뒤로 담쟁이덩굴이 담벼락에 빽빽했다.

담쟁이덩굴을 모르는 이 어디 있겠나. 벽 따위는 가볍게 뛰어넘는 담쟁이덩굴에 대해 많은 말을 할 수가 있다. 오늘 내가 주목한 건 담쟁이덩굴의 까칠한 잎이었다. 

그것은 나무의 혀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그것은 바람과 살랑살랑 호흡을 맞출 때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데 그걸 알아들을 귀가 없다는 것 아니겠는가. 추석 귀성객이 뭉텅 빠져나간 ‘훌빈한’ 공원에서 각별한 느낌으로 바라본 담쟁이덩굴. 포도과의 낙엽 덩굴성 나무.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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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