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신발 뒤축이 닳아서 구둣방을 찾았다. 뒤축을 새로 붙이면 새신처럼 신을 수 있단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당나귀나 되는 것처럼 수선한 신발을 신고 발길질을 해 보고, 푸륵푸륵 콧김도 날려봤다.

중동 지방이나 인도, 네팔, 머나먼 남미 안데스 산길을 여행하면 당나귀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돌길을 오를 때 당나귀를 타기도 하는데 힘이 천하장사. 당나귀와 몇날 며칠 같이한 적도 있었다. 짐을 나르기도 하고 나를 태우기도 하면서 산골마을 트레킹을 도와주었던 당나귀.

프란츠 카프카의 <꿈>에도 당나귀가 나온다. 꿈속 당나귀는 네 발로 걷지 않고 두 발로 일어서서 걷는데 은색 가슴 털과 배를 내놓고 다닌다던가. 도심에서 졸졸 따라다니며 짐도 들어주고, 폐지 줍는 할머니 언덕 오를 때 리어카도 밀어주는 이런 당나귀 한 마리 있었으면 좋겠다.

거짓 없는 투명한 세상을 이야기할 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는 이야기가 맨 먼저 떠오른다.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진실. 들을 귀가 당나귀 귀처럼 자란 사람들. 아무리 덮거나 속이려 들어도 당나귀 귀를 가진 사람들은 밝은 귀를 종그리며 금방 알아차린다. ‘잘 알아듣고, 잘 알아차린’ 사람들만이 진실의 세상을 사는 주인공들. 거짓의 세상을 밀고 가는 기계들과 달리 당나귀는 진실의 세상을 끌고 앞으로 간다. 주인 말을 잘 알아듣는 당나귀와 함께 산길을 걷는 즐거움. 자라다가 멈추는 손톱처럼 기운이 빠진 당나귀에겐 잘 익은 당근을 먹이자. 불쑥 또 힘이 자라면 다시 길을 출발. 오래오래 소금밭을 걸어왔는지 짠물이 고인 눈. 잔등을 쓰다듬어 가면서 당나귀와 함께 걷는 인생길.

시인은 당나귀 귀를 가진 사람들이다. 잘 들어야 잘 쓸 수 있지. 글을 쓰는 데 있어 경청만 한 비법은 없다. 사람의 말은 물론이고 자연의 언어도 알아듣는 시인. 영매처럼 다른 세상의 이야기까지 술술 들려주는 신비한 능력. 진실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우리 곁의 수많은 시인들 가운데 바로 당신. 어제보다 더 자란 귀를 만져보시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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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