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모르는 이 어디 있겠나. 몇 주 전 아주 색다른 장소에서 특별한 대나무를 보았다. 찬바람 죽죽 불어대는 일요일 오후. 모처럼 산으로 들지 않고 지하로 파고들었다. 두더지처럼 땅속을 빙빙 돌다가 지상으로 뛰어나와 보니 삼성역 근처 ‘한국문화의집(KOUS)’이었다. <타계 10년/씻김/혁혁한 무공을 기리는 장장 6시간의 굿판/박병천>. 현수막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서울에서 진도까지 가고도 남을 시간 동안 진도씻김굿에 나를 몽땅 투자하는 저녁이다. 7년 전 같은 장소에서 <가무 악인 박병천 3년 탈상 씻김> 공연에 홀딱 넘어간 적이 있었다. 앞으로 15주기, 20주기 추모 굿판에도 반드시 참석하리라는 사소한 결심을 했다.

이승의 사람들이 절절한 마음을 담아 펼치는 공연을 생전 건강했던 모습의 사진으로 앉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무송(舞松) 박병천(1933~2007) 명인. 무대에는 소박한 제사상이 차려졌다. 혹 진도에서 가져온 것일까. 여러 과일들이 진설되어 있고 병풍 옆에 대나무가 한 그루 있다. 실내에 우뚝 솟아 있는 대나무를 보니 저승에 뿌리를 두고 이승으로 건너온 나무 같아서 신령스럽다. 나무에는 망자의 넋을 담은 인형 같은 모습의 지전이 걸려 있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 듯 그네라도 타는 모습이다. 이윽고 안당, 초가망석, 고풀이, 길닦음 등등의 순서가 펼쳐졌다. 여러 국악기가 어우러진 가운데 대나무로 만든 대금을 불고 있는 이는 고인의 장남이다. 피리소리는 더욱 애틋하게 공중을 휘감고 돌아 대나무를 짚었다가 내 귀로 들어왔다. 눈뜨고도 기꺼이 코 베이듯 찰진 음악들이 산 자들의 마음을 뭉텅뭉텅 떼내어 갔다. 흥을 이기지 못해 겨드랑이에서 팔을 꺼내어 나뭇가지처럼 덩실덩실 흔드는 이도 여럿이었다. 오늘밤 이 자리에 모인 분들, 어느 경계까지 갔다 오실지!

대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겠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윤선도).’ ‘고기가 없으면 사람을 야위게 하지만/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한다네(소식).’ 고향집 뒤안에 있던 대나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대나무를 나는 지금 떠올리고 있다. 대나무, 벼과의 상록성 여러해살이 식물.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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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