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생일 때 ‘우리나라 대통령’은 박정희였다. 나이 오십을 앞둔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은 그의 딸이다. 내 생각엔 그녀가 아버지의 ‘치적을 능가’할 듯하다. 이제까지도 레임덕이 없는 데다 그녀가 마음먹은 일은 국정교과서든, ‘창조 국방’이든, ‘배신자 응징’이든 거의 성공했다.

가장 큰 이유는 사랑받기 때문이다. 야당 성향의 유권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녀를 정치인이나 대통령으로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비판이나 요구가 그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와 ‘대통령 박근혜’는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두려움과 사랑. 군주가 백성에게서 둘 중 하나를 쟁취해야 한다면, 당연히 두려움을 얻어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영원한 이론’이, “조국 근대화를 이룬 아버지”의 딸에겐 적용이 안되는 것이다. 폭력 경찰이나 국민을 쏴 죽일 수 있다는 국회의원은 두렵지만, 그녀는 두렵지 않다. 사랑은 ‘박심(朴心) 투표’로 연결되고 여기서 자유로운 정치인은 없으며, 선거는 그녀의 거의 유일한 정치적 능력이다.

대통령이나 유명인이 여성일 때 곤혹스러운 문제가 있다. 물론 이는 여성의 잘못이 아니다. 신경숙씨 표절 논란이 있을 때, 나는 표절 이후 우리 사회의 대응에 대한 비판 글을 쓴 적이 있다. 나의 대학원 생활 경험상, 학계의 표절과 문학이나 예술 분야의 표절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학술 논문과 달리, 예술의 표절 기준이 모호하고 따라서 관대한 편이다. 나 역시, 신경숙씨의 오랜 독자이며 그 애매함을 이해한다. 이 때문에 나는 당시 내 글이 그리 ‘센 비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독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메일을 받았다. “같은 여자로서 신경숙의 성공에 대해 함께 기뻐하지는 못할망정 남자보다 더 심한 비판을 할 수 있느냐, 여성의 시기심이 더 강하다는 사실에 절망한다”는 내용이었다.


소설가 신경숙씨_경향DB



내가 감히 신경숙씨의 경쟁자도 아닐뿐더러, 여기서 나와 신경숙씨는 여성이 아니다. 나는 그때 여성으로서 여성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독자’로서 ‘작가’에 대해 말한 것이다. 우연히 성별이 일치했을 뿐이다. 여성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과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데, 여성의 행동은 성별만으로 환원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신경숙씨든 누구든, 여성의 사회적 성공을 지지하고 기원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내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성별, 계층, 지역 등 사회적 약자집단의 힘이 커지는 것은 내게도 중요한 일이다. 약자에게 배당된 파이가 커져야 그 집단에 속한 나도 ‘얻어먹을 게’ 생긴다. 직원 10명을 뽑는데, 여성을 1명 뽑을 때와 4명을 채용할 때 어느 쪽이 여성에게 유리하겠는가. 나는 ‘4명 뽑는 세상’을 위해 투쟁한다.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난 29일 박 대통령은 이화여대를 방문했다. 이를 저지하는 학생들과 경찰의 충돌이 있었고 대통령은 무사히 행사장에 입장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행사에 참석한 여성 인사들과의 모임은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이를 보도한 종합 편성 채널의 남성 앵커는 다음과 같은 요지로 말했다. “여대생이 여성 대통령을 반대한다니, 이해할 수가 없군요. 여성이 여성을 배척하는 이런 분위기, 어떻게 보십니까?” 이 사건 역시 여성이 여성의 방문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대학생’이 ‘대통령’에게 항의한 경우다. 학생들이 여성 혐오가 있어서 여성 대통령 입장을 막은 것이 아니다. 행사장의 ‘좋은’ 분위기는, 여성과 여성의 관계가 아니라 보수와 보수의 정체성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일상에 무수하다. 남성과 남성이 갈등하면 대리와 과장의 싸움이 되지만, 여성 상사와 여성 부하의 갈등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남자의 적도 남자다. 남성들의 투쟁은 여성의 그것보다 더 격렬하지만, 그들의 싸움은 ‘노사 갈등’이거나 ‘국제 정치’지, 같은 성별 간의 질투로 비하되지 않는다. 남성 대통령이 남녀공학 대학을 방문했을 때, “남성들은 남성의 성공을 시기하는군요”. 이런 멘트가 가능할까. 탁월한 여성 정신분석학자 카렌 호나이는, 여성의 사회 진출에 가장 방해되는 구조는 여성 간의 갈등을 ‘시기심’으로 명명하는 사회라고 분석한 바 있다.

성차별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여성의 존재를 시민, 노동자, 지식인, 공무원 등 그들이 직접 수행하고 있는 다양한 역할이 아니라 ‘여성’과 ‘여성의 성역할’로만 제한하는 규범과 제도이다. 그래서 작가에 대한 독자의 언급은 시기심으로, 대학생들의 국정 비판은 여성 대통령 개인에 대한 적대감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정희진 | 여성학 강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