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인에게 최초의 노벨평화상이 주어진다면 이 여자가 받아야 마땅하다. 생존하는 세기의 ‘걸크러시’ 패티 스미스. 밥 딜런과 함께 2017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라야 마땅했을 만큼 문학적인 재능이 남다른 음악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밥 딜런처럼 거만하지 않다. 애매모호한 가사로 심오한 척하지도 않는다. 성품은 강건하되 겸손하고 메시지는 한 편의 저항시인 듯 분명하되 아름답다.

그런 그녀가 2009년 생애 최초로 한국을 방문하여 지산록페스티벌에서 부른 노래가 있다. 노래하는 저항 시인으로서의 삶을 밥 딜런처럼 도망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선 40년 인생을 대표하는 곡 ‘피플 해브 더 파워(People Have The Power)’. “우리에게, 사람들에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그러니 “계속 꿈꾸고 희망하는 걸 멈추지 말라”고 주문하는 패티 스미스의 노래를 들으며 심장이 끓어올라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지만 사실은 속으로 울기도 했다.

지난 15일 서울 은정초등학교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사인을 받을 종이를 찾기 위해 다급하게 가방을 뒤지는 학생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왼쪽 사진). 해당 학생이 문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사인이 담긴 공책을 펼쳐 들고 웃고 있는 사진도 인터넷에 공개됐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캡처

때는 그 꿈이, 그 희망이 너무도 요원해 보이던 이명박 정부 1주년 즈음이었다. 즐거운 일이라고는 기껏해야 후배 칼럼니스트 김현진이 이명박 정부 취임 100일을 맞아 음주 운전으로 먹은 벌점 100점을 사면받은 후 쓴 글조각을 읽고 낄낄대던 재미밖에 없었다. “내 벌점 돌려내라, 놈의 신세 따위 지고 싶지 않다, 적의 동정 따윈 필요 없다” 했던….

그랬다. 너무도 사사롭게 자기 이익을 알뜰하게 챙긴 이명박·박근혜 9년을 살며 즐거움이라고는 진정 그것밖에 없었다. ‘국민의 주권’으로 뽑은 ‘국민의 대표자’를 국민 스스로 미천한 동물 두 마리를 대동하여 놀려먹는 울적하기 짝이 없는 그 참담한 재미. 그것 말고는 아무런 공적 즐거움이 없는 시절이었다. 대통령 자격이 없는 잘못된 후보가 잘못된 언론의 눈가림 속에서 결국 대통령이 되는 나라가 싫어서 이민 갈 궁리를 하는가 하면 대통령이 나오는 뉴스라면 무조건 다 싫어서 TV를 끊고 신문마저 끊고 살던 때였다.

그런데 그 시절이 다 지나갔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꿈만 같다. 대통령 한 명 바꿨을 뿐인데, 심지어 며칠 안됐는데 이렇게 다를 수가…. 돈 한 푼 안 들이고 좋은 나라로 이민 간 것 이상이다.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는 물론 노르웨이나 핀란드마저도 부럽지 않다. 켄 로치나 아바스 키아로스타미풍의 멋진 로맨스 영화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매일 아침 대통령 뉴스를 찾아 듣거나 읽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힐링이 되는 나날이다.

그리하여 ‘후기 진실(post truth) 시대’ 사는 나는 오늘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유튜브 사설 뉴스를 본다. 대통령이 나오는 영국 영화 <러브 액추얼리>에 사랑스럽게 가난한 초등학생 아이가 나오는 이란 영화를 섞어 놓으면 이런 장면의 영화가 나오게 될까? 자기만 사인을 못 받게 될까봐 초조한 초등학생 아이가 가방에서 공책과 연필을 찾는 동안 기꺼이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는 대통령을 보게 될 줄을! 심지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쪼그려 앉아 있는 눈곱만큼도 권위의식 없이 듬직한 남자의 모습을 대한민국의 국민 된 자로서 보게 될 줄을…. 결코 ‘연출’이 아니라 자신의 살아온 ‘인생’으로, 지켜지지 않는 번지르르한 ‘말’이 아니라 오랜 시간 엄청나게 잘 준비된 진실한 ‘행동’으로 증명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에서 우리는 기꺼이 사랑과 자긍심을 느끼는 나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힘’ 안에서, 그 ‘힘’이 쌓이고 쌓여서 문재인이라는 대통령이 탄생한 거다. 답답하고 어눌하고 ‘권력욕’마저 없던 재수생 문재인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건 안철수와 함께 민주당 호남 의원들이 우르르 탈당했을 때부터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민주당 내부를 먼저 개혁하고 표창원이나 조응천 같은 참신한 외부 인사를 오랜 시간 공들여 끈기 있게 영입하는 문재인 당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난생처음으로 한 정당의 당원이 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자신의 금쪽같은 사생활을 반납하고 어이없이 무너져 버린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기꺼이 거리로 나온 촛불 시민들이 있었다. 사람의 에너지는 주고받으며 커진다. 매주 광장에서 촛불 시민들과 함께한 문재인은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힘으로 점점 더 막강하되 정의롭고, 막힘없이 따뜻한 리더로서의 자심감을 완벽하게 충전하게 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심지어 그 진정성은 의심하지 않지만 과연 적폐청산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지지자가 아닌 사람들조차 끌어안으며 통합할 수 있을지를 의심하며 끊임없이 이재명과 안희정을 곁눈질한 이들의 힘마저 흡수하여 더 유능하고 더 품이 큰 지도자로 거듭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기존의 정통 미디어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대중의 시대’는 거의 다 끝나가고 있다.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는 TV조선의 2049 시청률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정통 미디어가 감추는 진실의 이면을 서로를 공유하고 전파하고 학습하는 다중의 시대가 도래했고, 스스로 자신이 가진 ‘힘’을 인식하고 적극 행사하는 ‘시민 전성 시대’가 도래했다. 바로 그 다중과 시민이 9년간의 길고 긴 ‘대통령 스트레스 시대’를 ‘대통령 힐링 시대’로 산뜻하게 바꾼 것이다. 우리 모두 축하받아 마땅하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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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