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책무가 연구와 교육이라는 ‘당연한’ 인식은 사실 역사적 산물이다. 중세 대학의 역할은 사람으로서의 품성과 문화적 소양을 익히는 교양교육이었다. 그러나 산업화를 거치면서 대학이 ‘유용한’ 지식을 창출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커졌으며, 전문가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교양교육에 의한 인간 형성이라는 이상은 점차 약화되었다. 연구는 물론 교육마저 산업계의 요구에 부응해야 마땅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 오늘, 대학의 위상은 급전직하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도 빌 게이츠도 중도에 그만두고 만 대학이 지금 시대에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대학의 운명이 기로에 놓인 것은 학령인구 급감에 직면한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러나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더욱, 대학의 존립은 교양교육, 특히 고전 교육에 달려 있다. “우리의 목적은 어떤 직업에 필요한 특정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직업의 바탕이 되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공자의 ‘군자불기(君子不器)’를 떠올리게 하는 이 문장의 출처는, 대학이 산업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난에 맞서서 1828년에 제출된 ‘예일 보고서(Yale Report)’다. 그들이 강조한 토대란 비판적 사고력을 말한다. 이를 기르기 위한 가장 멀어 보이지만 가장 확실하게 입증된 길이, 바로 고전을 깊이 읽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성공은 더 이상 대학의 연구와 직업교육만이 유일한, 혹은 최선의 길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학이 지닌 보편적 교양교육의 기능이 시장 논리에 의해 허물어졌을 때, 극소수의 혁신적 자산가와 그에 종속되는 대다수의 무지한 노동자/소비자만이 남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성찰도 비판도 없이 허락된 욕망을 누리며 시장의 부속품으로 자신을 내맡기는 이들로 가득한 사회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

고전이 지닌 힘은 그 어깨에 올라탔을 때 확보되는 전망에 있다. 중요한 것은, 고전을 직접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하고 해석의 방법과 공간을 넉넉히 확보해 주는 데에 있다. 인성이니 리더십이니 하는 방향을 정해두고 몰아가는 교육이 아니라, 자유롭게 비판하고 성찰하며 고전을 딛고 오늘을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이다. 그것이 대학의 교양교육이 지닌 가치다. 이것을 포기한다면 대학은 정말이지 존립할 이유가 없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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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