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 밥 주는 문제로 갈등을 빚고
청년 시급을 두고 장난치는 어른들
사회적 양육자들이 내뿜는 독소
아이들의 정신과 삶을 멍들게 한다”


부모의 양육 방식이 자녀의 심리적 삶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정신분석학의 틀이 만들어지던 초기부터 밝혀진 일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 정신분석학자 안나 프로이트, 도널드 위니콧 등은 전쟁을 경험한 아이들의 특별한 심리를 알아차리기 시작했고,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그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를 연구했다. 부모나 대체 양육자의 정서적 돌봄이 아이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이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현실 검증을 거쳤다. 전쟁고아를 수용하는 시설에서 아기들에게 규칙적으로 우유를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었지만 아기들은 이유 없이 죽어갔다. 1년이 지나자 80%의 아기가 사망했다. 그 시기에 반대 사례도 있었다. 병원에서 포기한 병든 아기를 수용시설 양육자 할머니가 살려낸 일이었다. 그녀는 아픈 아기를 늘 품에 안거나 등에 업고 생활하면서 잠시도 몸에서 떨어뜨리지 않았다. 양육자의 정서적 온기가 아이의 정신뿐 아니라 육체적 삶까지 좌우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다.

정신분석학이 부모의 양육이 자녀의 정신 형성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밝혀나가는 동안 부모가 반드시 좋은 역할만 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동시에 밝혀졌다. 부모가 항상 옳다는 전제군주적 양육 방식이 잘못되었으며, 부모의 잘못된 양육에 해악을 입은 자녀가 성인이 된 후의 삶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알고 있었던 그 지식이 대중들의 보편적 상식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 일의 맨 앞에 윌프레드 비온의 유엔 연설이 있다. 1960년대 중반 유엔에서는 영국 정신분석학자 윌프레드 비온을 초청하여 부모의 양육 방식이 자녀의 삶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때 비온이 한 말은 정신분석학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선언으로 기록된다.

“이 세상에는 실제로 나쁜 부모가 존재합니다.”

부모 중심으로 편성된 세상에서 아이를 지배, 판단, 통제하는 입장에 있던 부모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었을 것이다. 저 문장은 21세기 우리나라 부모들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이따금 부모의 잘못된 양육 방식을 일깨우는 내용의 공익광고를 만나는 때가 있다. “아동폭력 가해자의 80%는 부모입니다”라거나 “엄마는 나를 사랑합니다, 내가 말을 잘 들을 때만”. 그런 카피와 함께 슬퍼하는 아이의 영상이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곤 했다. 그때마다 혼자 놀라는 마음이 되었다. 카피는 참인 명제이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상식이지만 대중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일었다. “내가 옳고 선하고 정당하다”는 나르시시즘적 자기 인식조차 깨지 못한 문화인데 저렇게 크고 강한 것을 내밀면 이제 한 발 내딛기 시작한 자기 성찰 분위기가 역풍을 맞은 듯 움츠러들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광고는 한두 번 비치다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고, 그때마다 혼자 또 그 배경을 궁금해했다.


미국 심리학자 수잔 포워드는 1980년대 말에 <유독한 부모들(Toxic Parents)>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부모의 나쁜 양육방식에 의해 양육된 결과 성인이 된 후의 삶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치료한 임상 경험을 토대로 저술한 책이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자녀에게 독이 되는 부모를 몇 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한다. 전지전능한 입장에서 아이들을 심판하고 벌주는 부모, 기본적인 양육 의무를 방기하는 부모, 매사에 아이를 조종하고 통제하는 부모, 알코올 중독자인 부모, 잔인한 말로 상처주는 부모,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 저자는 유독한 부모에 의해 고통받는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저 책이 미국에서 널리 읽힌 결과 국내에 번역 출판된 시기는 1990년대 말이었다.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부모가 나쁠 수도 있고, 부모의 양육이 자녀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당시에는 정신분석이라는 학문 분야에 대해 보편적이고 바른 인식조차 정립되지 않았다. 출판사에서는 국내 상황을 감안한 탓인지 <유독한 부모>라는 제목 대신 <흔들리는 부모들>이라는 제목을 달아 책을 소개했다. 그 책은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가 되어 10년이 지난 후 새로운 표지로 재출간되었다. 그때는 우리 사회 분위기도 조금 달라져 비로소 <독이 되는 부모>라는 제목을 사용할 수 있었다. 책 제목 하나만 두고 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천천히, 그리고 어렵게 스스로를 성찰해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미국 정신분석학자 마이클 아이건은 <독이 든 양분(Toxic Nourishment)>의 결론 대목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에게 양분을 주며 살아간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창조 활동을 하고, 도시와 문화를 건설하고, 그 모든 노력들에 애정과 양분을 준다. 양분을 주는 우리의 노력이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독소를 포함하고 있고, 우리 자신도 다양한 독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직면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종의 도전이다.”

저 책은 대놓고 나쁜 부모 이야기가 아니라, 상식적인 부모의 사랑 속에 은밀하게 내포된 독성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다. 1999년 미국에서 출간되었는데 당시 미국에서도 양육 속에 독이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도전처럼 어려웠음을 짐작하게 된다. 저 책 역시 출간 10년 만에 국내에 소개되었다. 지금이야 그 분야 전공자들이 읽겠지만 머잖아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가 되면 다시 10년쯤 후, 우리도 양육에 독이 포함되어 있음을 직면하는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소박한 기대를 품어본다.

아이들에게 밥 주는 문제, 젊은이들의 최저임금을 두고 갈등하는 어른들을 보고 있으면 ‘독이 든 양분, 독이 되는 부모’가 선연하게 이해된다. 그들도 틀림없이 독이 든 양분을 먹고 자랐을 거라는 사실도 짐작하게 된다. 부부싸움의 도구나 구실로 사용되는 아이들의 무의식에는 피할 수 없는 죄의식과 부적절한 존재감이 자리 잡는다고 한다. 자녀 양육을 두고 “누구 탓인가?”를 시비하는 부모를 보는 정신분석가들은 알고 있다. 처음부터 그런 질문은 잘못된 것임을.


김형경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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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