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 떠다니는 저기 저 새요. 네 몸에는 털 있고 깃이 있지. 밭에는 밭곡식, 논에는 물벼. 눌하게 익어서 수그러졌네! 초산(楚山) 지나 적유령 넘어선다. 짐 실은 저 나귀는 너 왜 넘니?” 옷 없고 밥 없고 자유가 없어 나귀에 짐 싣고 어디론가 이주하는 사람들. 식민지 백성의 설움이 담긴 소월의 시 ‘옷과 밥과 자유’다.

지금 세상이야 아사(餓死)나 동사(凍死)는 없어졌지만, 기온이 뚝 떨어진 아침에 일교차를 느낄 때, 아- 사람이 얼어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 엊그제는 더워 쪄죽겠다고 징징대던 인간이 하루아침에 추워 죽겠노라니. 하지만 이처럼 인간이 계절에 민감하고, 감정도 복잡해지는 건 우리가 ‘하나뿐인 목숨을 아끼는 존재’이기 때문이겠다.

인류가 왜 꽃에 환호하고 행복해하는가라는 의문. 꽃이 피는 장소에는 반드시 옷과 밥, 그리고 자유가 덩달아 있다는 정보를 갖게 된단다.

꽃이 있으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달달한 꿀도 있고, 과일나무가 무성한 숲도 있으며, 열매를 따먹으러 새들이나 짐승들이 찾아들겠지. 그렇다면 우리 인간도 덩달아 굶어죽지 않을 거고 말이다. 인간이 꽃에 마음이 팔리는 이유는 아마도 이 때문이 아닐까라는 학설. 그 어떤 선물보다도 꽃다발에 얼굴이 밝아지는 건 우리 안에 이러한 본성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던가. 

선선해서 그런지 밥맛이 돈다. 입맛이 좋아졌다. 찬물에 밥을 말아 생선 한 토막으로 간신히 떠넘기던 지난달과 달리 깍두기에 밥을 비벼설랑 배가 터지도록 먹는다. 입이 ‘쩍’ 벌어지게 먹으면 ‘입적’할까봐 눈치도 살펴가면서.

갈꽃들이 피어나자 입맛이 돌아왔다. 밭곡식과 물벼는 풍년 수확을 앞두고 있구나. 태풍이 몰고 온 폭우로 인해 충분히 해갈한 땅에선 고구마가 종아리만 하게 여물었다. 고구마에 체한 적도 있는데, 입맛이 좋을 때는 군침으로도 한 입에 꿀꺽했던 나였다. 도라지 밭에 꽃구경이 좋으니 어서 오라며 동무가 초대했다. 고구마를 삶고 커피를 내려 에코백에 챙겼다. 식기 전에 어서 나가보아야 하겠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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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