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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 그늘 언덕

가장 유순한 흙부터 녹기 시작하고

쓱쓱 손바닥을 비비면

엄지 끄트머리 갈라졌던 굳은살도 보들해진다

 

감감무소식 너의 곁에서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던 내 곁으로

새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천천히

흐르고

돌아온다

무거웠던 왼발, 오른발, 걸었더니

아침 골목길이 움직인다

가방 멘 아이들이 지나가고

일터로 가는 사람은 첫 담배에 불을 당긴다

 

하루에 하나씩

손가락을 모두 활짝 펼치고 나면

열릴 것이다

3월의 맨 윗단추가

 

 - 배성희(1959~)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아니 벌써! 정유년 새해도 두 번째 달이다. 먹고사는 일과 걱정거리에 끌려다니는 사이에, 소설보다 재미있고 드라마보다 비현실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뉴스에 정신 팔려 있는 사이에, 슬쩍 1월 지나고 2월이라니! 영하 10도 밑을 후벼 파는 맹추위와 눈보라가 한창인데, 입춘 지나 곧 우수라니!

살을 에는 바람에 숨어 오는 희미한 봄기운이 콧구멍에서 느껴질 것 같다. 우리 코보다 일찍 봄 냄새를 맡은 나무들은 얼었던 수액을 녹이며 가지 속에서 움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땅 밑에서도 봄기운은 조금씩 얼음을 녹이며 아지랑이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겨울옷이 무겁게 느껴지고 몸 어딘가가 근질근질하다면 그건 봄기운이 시킨 짓일 것이다. 추운 아침 출근길에 “무거웠던 왼발, 오른발, 걸었더니/ 아침 골목길이 움직”이고 있지 않는가.

추위에 곱은 열 손가락을 하루에 하나씩 펴면, 또 3월이다. 머리는 몰라도 피와 살은 봄기운을 감지하고 기지개 켜는 봄이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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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