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때부터 결혼 생각이 없었다. ‘비혼주의’라는 말을 모를 때에도 이미 비혼주의자였던 셈이다.

시작은 어린 소녀들이 흔히 느낄 법한 ‘성관계에 대한 막연한 혐오’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이유는 조금씩 달라졌다. 좋아하는 사람을 놓고 마음이 갈대처럼 변하던 10대 후반에는 “한 남자랑 어떻게 평생을 살아”라는 마음이었고, 20대 중반에는 여성에게 유독 불리한 결혼제도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싫었다.

20대 후반이 되어서는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지 않는다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인류 문명 대대로 마치 ‘자연’인 것처럼 군림하는 문화가 동등한 시민을 차별하는 제도로 기능한다면 응당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구실은 계속 바뀌었지만 비혼 결심만은 변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였다. 나의 비혼주의를 믿지 않았던 죽마고우가 “웃기지 마라. 네가 결혼을 안 할 리가 없다. 내기하자”고 도발(!)해 왔다. 나는 스스로에게 확신이 있었으므로 흔쾌히 그에 응했다.

내기의 내용은 이랬다. “손희정이 마흔이 될 때까지 미혼이라면, 내가 세계여행을 시켜준다.”

그리고 2017년. 나는 드디어 만으로 마흔이 되었다. 여전히 미혼이며, 결혼을 시도해 본 적 역시 전혀 없다. 내기에 이긴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내기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누구나 어렸을 때 실없는 내기를 하고 나이 들면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법조인’으로 성장한 나의 친구는 서류 한 장 남기지 않은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나섰다. 다만 내기의 내용은 살짝 변경됐다. 세계여행은 너무 과하므로, 같이 여행을 가게 되면 항공권을 끊어주겠노라고. 그리하여 내년 2월에 우리는 싱가포르에 놀러간다.

나이 마흔에 맞이하는 전문직 비혼 여성의 삶은 꽤 재미있고 스펙터클하다. 하지만 사회적 통념상 잘 포착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적잖이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영포티’와 ‘나비남’의 등장은 나의 주변부적인 위치를 잘 보여주는 현상이었다.

X세대 출신, 90년대 학번, 직장에서 중간 관리자의 자리에 올랐고, 이제 후배들을 위해 지갑을 열 수 있는 세련된 중년이라는 의미의 영포티. 이 말이 지시하는 남자들은 내 또래다. 한국 사회는 그 세대를 영포티라고 부르면서 높이 받들고, 심지어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이들을 20대 여성들과 엮어주려고 안달이 났다. 하지만 함께 나이 들어 온 여자인 나를 호명해주는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유행이 지난 ‘골드미스’도 30대 여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내 또래는 열외다.

나는 국가가 그토록 싫어하는 “하향결혼을 하지 않아 국가 저출산을 초래한 고스펙 여성”이고, 그나마도 대한민국 출산지도에도 포착되지 않는 나이인 탓에 내년부터는 아예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그러므로 복지의 대상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영포티’들은 40대까지 자유롭게 살다가 50대에 독거남이 되면 나라에서 ‘나비남’이라 부르며 그들을 위한 영화제도 개최하고 돌봄 노동도 제공한다는데, 과연 나는 무엇이 될까? 결국 나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어떻게든 홀로 고군분투하며 생존하는 것인가?

그래서 성평등 개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대표에 따르면 성평등 개헌의 핵심 목표는 “대기업 정규직 남성 중심으로 짜여 있는 복지 체제에 편입되지 못해 국가로부터 마땅한 기본권을 받지 못하는 절대다수 인구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취약한 복지 기반을 확장하는 헌법적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 우파에서 이를 막아서고 나섰다. ‘성평등’이라는 용어가 ‘양성평등에 기초한 가족제도를 위협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복지를 이성애 중심 핵가족에게 전가하겠다는 뜻 외에 다른 말이 아니다.

나는 양성평등 개헌이 아닌 성평등 개헌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일 가정 양립으로 과로하는 독거 포티’인 나에게는 자격 조건을 따지지 않고 국민으로서 응당히 누려야 할 기본권을 보장해줄 개헌이 필요하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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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