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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공자의 말이 있다. 비유적인 표현인데다가 앞뒤 맥락 없이 남아 있어서 의미 파악이 쉽지 않지만, 대개 군자는 용도가 정해진 기구와는 달리 어떤 자리에서든 쓰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정 기능에 국한되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긴 하지만, 전문가가 각광받는 이 시대에 이것저것 두루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권하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기(器)를 ‘고정되어 변할 수 없음’의 비유로 이해할 때 이 말의 의미가 좀 더 확장되어 다가온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노자는 “부드럽고 약한 것이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고 했다. 칼로 두부 써는 것처럼 쉬운 일이 없고 약육강식이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을 모르고 한 말은 아닐 테니, 고정관념을 깨려는 역설적 수사로 봐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부드럽고 약함은 생명의 속성이고 단단하고 강함은 죽음의 속성이라는 그의 말과 조응해 보면 새로운 의미가 열린다. 노화의 특징 중 하나는 ‘굳어감’이고 그 끝은 죽은 육신의 뻣뻣함이다. 반면에 씨앗의 딱딱한 껍질을 뚫고 나오는 여린 떡잎, 완고한 마음을 녹이는 아기의 웃음처럼, 생명은 늘 부드럽고 약한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살아 있음의 특징은 변화할 수 있음에 있다. 굳지 않은 진흙이라야 새로운 모양을 만들 수 있듯이, 생각도 감정도 말랑말랑해야 변화가 가능하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정치든, 더 이상 변화할 수 없을 만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면 희망이 없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 없이는 우리는 어느새 딱딱해질 수밖에 없다. 공부하는 사람을 뜻하는 유(儒)는 <설문해자>에 유(柔)로 풀이되어 있다.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부드러움이 자신을 새롭게 만드는 공부의 기본자세다.

옛 주석에서는 군자불기를 “제한된 길만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변화를 감지하고 움직여서 대응하는 것이 군자의 덕이다”라고 설명했다. 기회주의적 임기응변이 아니라, 지향을 분명히 하되 자칫 경직되지 않도록 늘 두려운 마음으로 성찰하는 자세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신영복 선생님 말씀처럼, 바늘 끝이 떨리지 않고 한쪽으로 고정되어 있다면 그것은 이미 나침반이 아니다. 단단하고 강한 것들끼리 부딪쳐 서로 상처만 입히고 있는 이 시대에, 말랑말랑함의 생명력을 떠올리는 이유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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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