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저것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자

저것은 침대처럼 무겁다

저것을 버려야 한다고 결정하자

저것은 망가진 침대

저것이 망가진 것뿐인데

나는 얼굴이 벌게지도록 침대를 옮기고 있다

저것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할 때마다

내 몸 위로 침대가 버려진다

내 몸에 이렇게 방이 많았나

방마다 망가진 침대가 들어앉는다

이렇게 좁은 입구를 뚫고

어떻게 네가 들어온 거니?

나는 어쩌자고 침대를 낳을 생각을 한 거니?

좁아터진 방마다 침대가 만삭이다

일요일에 해치울까?

엘리베이터는 아직 수리 중이다

신호등 앞에서만 의견이 일치하는 사람들은

줄곧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다

폭신한 구름다리를 들고 서 있는 골짜기들처럼

나는 무거워졌다 - 조말선(1965~ )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침대는 안방을 차지한 거대한 쓰레기가 된다. 그 무게가 짓눌러 갑자기 마음은 무거워지고 넓은 안방은 좁아터져 숨이 막힌다. 볼 때마다 거슬려 신경은 곤두서고 손발은 안달이 난다. 당장 쓰레기통에 처넣어야지, 결정하는 순간 마음은 바빠지고 정신은 사나워진다. 망가진 것은 침대일까 나일까?

버려야지 생각하면 새 물건도 쓰레기가 된다. 취향이 맞지 않아서 유행이 조금 지나서 신상품이 나와서 생각이 바뀌어서 물건들은 무더기로 쓰레기가 된다. 물건들은 주인의 눈치를 본다. 언제 버려질지 몰라 벌벌 떤다. ‘우리 애’라고 부르던 강아지는 어느 날 유기견이 되고 가까운 친구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몹쓸 놈이 된다. 산처럼 쌓였다가 매립되는 쓰레기, 섬이 되어 바다를 떠도는 쓰레기를 보라. 세상에! 저렇게 망가진 마음들이 많다니!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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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