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4일이었으니까 약 석 달 전이다. 인천 선학 빙상경기장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스웨덴과 연습경기를 가졌다. 경기장 밖이 시끌시끌했다. 환영 집회와 반대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대한애국당 당원 수십명은 차량 앰프 볼륨을 잔뜩 높여두고 욕설 섞인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경호가 삼엄했다. 남북의 거리는 여전히 멀었다. 선수단이 도착했고, 격리나 다름없는 경호 속에 줄을 지어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몸을 푸는 모습을 통유리 창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양쪽 선수들의 표정이 여전히 굳어 있었다. 같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지만, 신발로 구분할 수 있었다. 북한 선수들은 자국 운동화를 신었다. 흰 운동화를 신은 이들이 한쪽에 따로 모였다. 서울과 평양의 거리도, 선수들 마음 사이의 거리도 아직은 좁혀지기 전이었다.

4월 27일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인 옥류관 평양냉면. 서성일 기자

평창 올림픽이 시작됐다. 훈련을 마칠 때마다, 경기를 치를 때마다 취재구역에 선 그들에게 취재진은 “얼마나 가까워졌냐”는 질문을 채근하듯 쏟아냈다. 비슷한 답이 반복됐다. “잘 지내고 있다”, “많이 친해졌다”, “남과 북 그런 거 없다”. 가끔 날 선 대답이 삐져나오듯 툭 튀어나왔다. “잘 모르겠다”, “내가 대답할 일 아니다”. 그럴 때면 긴장감이 돌았다. 찬 바람이 훑고 지나간 듯했다.

단일팀은 급조됐다. 정치권이 서둘렀다. 선수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삐걱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일”이라는 막연한 설득이 쉽게 받아들여질 리 없다. 쓰는 말이 달랐다. 전력 강화를 위해 귀화한 선수들이 여럿이었다. 영어와 남한 말과 북한 말이 얼음 위에서 자꾸 엉켰다. 전술 회의 때는 통역의 시간이 있지만 쉼없이 움직이는 경기 속 여유는 없다. 급하면 자기 말이 튀어나왔다. 패스가 빗나갔고, 수비 라인이 정돈되지 못했다. 빈 공간이 생겼고, 자꾸 골을 먹었다. 경기는 다 졌다. 어린 선수들은 엉엉 울면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일본전에서 첫 골을 넣었고, 0-8로 졌던 스위스를 만나 0-2로 잘 싸웠다. 단일팀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말보다 몸으로 먼저 상대의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마지막 경기 스웨덴전에서 2피리어드 막판까지 승리를 노려볼 만했다. 마지막 경기를 끝냈을 때 선수들은 조금 가까워져 있었다. 서로 다른 색의 신발끼리 모여 있던 어색함은 많이 사라졌다. 마지막 경기를 앞둔 훈련 때는 여기저기 모여서 ‘셀카’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들을 가깝게 만든 것은 몸을 부딪치며 함께한 스킨십과 훈련이 아니었다. 마음을 열게 한 것은 함께 먹은 ‘밥’이었다. 경기 일정이 모두 끝난 뒤 기자회견이 열렸다. 단일팀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묻는 질문에 랜디 희수 그리핀은 “이틀 전 아침 식사 때 선수촌 식당에서 북한 선수들을 만났다. 다들 맥도날드 앞에 줄 서 있길래 우리도 같이 줄 섰다. 아침 식사인데, 북한 선수들이 맥플러리(아이스크림)를 먹길래 같이 먹었다. 아침으로 맥플러리를”이라며 웃었다. 마지막 회식은 고깃집에서였다. 후식으로 시킨 냉면이 별로였단다. 북한 선수들은 “평양 오면 옥류관 냉면을 사주겠다”고 했다. 김희원은 “(김)향미 언니도, (정)수현 언니도 곱빼기로 사준다고 약속했다. 언니들이 진짜 평양냉면은 면발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틀 뒤 북한 선수들이 버스에 올랐다.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잡은 손을 쉽게 놓지 못했다.

오랜 세월 갈라져 있던 틈을 메운 것은 햄버거와 아이스크림, 냉면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옥류관 수석 요리사가 직접 면발을 뽑은 ‘평양랭면’은 미식의 단계를 뛰어넘는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 화해와 평화는 당위에 기반한 구호와 선동에서 오지 않는다. 깔깔거리며 함께 먹는 아이스크림과 랭면이 시작이다. 단일팀이, 스포츠가 찾아 보여준 길이다.

<이용균 ㅣ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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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