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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이 가까워지면 라디오가 시간을 알려준다. 띠띠띠땡!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에 그 시각은 지나고 만다. 아무리 반듯한 아나운서일지라도 결과적으로 바르지 못한 시보(時報)를 하는 셈이라 할 수 있겠다. 예전 국악방송의 어느 진행자는 이런 미묘한 사태를 고려했음인지 흥겨운 음악 하나가 끝나고 나면 이런 멘트를 날리기도 하였다. “지금 시간 오후 1시10분 이쪽저쪽입니다.”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의 입구로 들어가다가 이런 시간의 이정표를 듣는 것이 참으로 신선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귀기울여도 들을 수 없어 게시판에 이런 글을 직접 올렸다. “우리가 같은 강물에는 두 번 들어갈 수 없듯이 1시10분이라고 말하는 순간 1시10분은 어디론가 흘러가버립니다. 해서 이쪽저쪽이라고 하는 표현이 가장 적확하고 정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쪽저쪽 하면 우리네 삶이 생과 사의 이쪽저쪽에 있음을 일깨우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무슨 소쩍새가 시간을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앞으로 이 참신한 표현을 더 들려주실 수는 없겠는지요? 늘 좋은 음악에 가슴이 출렁댑니다.”

그제 경향신문을 펼치는데 봄소식을 전하는 버들강아지와 목련 사진이 눈을 찔렀다. 목련 아래에는 경희대학교의 한 졸업생이 기념사진을 찍는 광경이 희미하게 담겨 있었다. 꽃망울을 터뜨리는 목련을 딛고 완도로 곧장 달려갔다. 그날 나는 완도의 식생을 관찰하는 길이었다. 남녘이라지만 날씨는 쌀쌀했다. 손수건만 한 햇볕을 등에 지고 하산하는 길이었다. 산의 위력이 끝나는 곳에 논이 있고 그에 잇대어 자투리 밭이 있고 그 끝에 허술한 집이 있었다. 이 뒤안 여기에 왜 이 나무인가, 하는 것은 우문이다. 그을린 굴뚝의 온기에 기댄 채 바깥을 기웃거리고 있는 나무 한 그루, 목련이었다. 가지 끝마다 너무도 분명하게 오로지 한 꽃송이 내걸고 있는 목련. 입춘 지나고 우수 근처. 봄 냄새가 물씬했다. 겨울을 뚫고 나오는 이 기세를 봄이라고 꼭 집어 말하면 봄이 어디론가 도망가지 않을까. 그러니 이 낮은 지붕을 슬그머니 휘어잡는 목련 아래에선 이렇게 말하는 게 좋겠다. 바야흐로 봄의 이쪽저쪽이로구나! 목련, 목련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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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