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사용된 만큼 한자 가운데에는 꽤나 기구한 운명을 지닌 글자들도 있다. ‘비(匪)’는 원래 ‘대나무 상자’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아니다’라는 부정의 의미를 지닌 글자가 없어서 음이 비슷한 ‘비(匪)’를 빌려 쓰다 보니 원래 뜻으로 구분하여 사용하기 위해서 비(竹+匪)가 따로 만들어졌다. 자기 뜻을 잃어버린 비(匪)는 ‘비(非)’에 밀려서 부정사로도 그리 많이 사용되지 않게 됐고, 주로 ‘토비(土匪)’ ‘비적(匪賊)’ 등 악당을 가리키는 말로 전락했다. 급기야 ‘무장공비(武裝共匪)’처럼 섬뜩함을 주기 위한 어휘에나 쓰이게 되고 말았다.

‘비(匪)’가 악당의 의미로 비하되는 과정에 <주역> ‘비(否)’괘의 괘사인 ‘비인(匪人)’이 놓인다. 비인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행위가 부정한 사람’ 등으로 풀이된다. 천지만물이 꽉 막혀서 소통하지 못하니 군자는 불이익을 당하고 소인이 득세한다. 외유내강이 아니라 내유외강의 시대다. 삿된 이익으로 가득 찬 이들이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힘을 과시하는 세상을 뜻하는 말이 비인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자신의 운명도 중요하지만 어떤 이를 만나는가도 중요하다. ‘법(法)’은 많이 알려진 대로, 신령스러운 짐승에게 악인을 들이받게 해서 제거한다는 데에서 유래한 글자다. 늘 수평을 유지하는 물처럼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집행을 강조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 이 ‘법’이 추락할 대로 추락한 ‘비’를 만나서 ‘법비(法匪)’라는 치욕스러운 어휘가 됐다.

일반적인 비류(匪類)보다 더 괘씸한 것이 법을 앞세운 법비다. 불법을 자행하는 비류는 법에 호소하여 벌할 수 있지만 법의 이름으로 남의 눈에 피눈물이 흐르게 하는 법비는 법으로도 어찌해보기 어렵다.

공비는 무장이 필요하지만 법비는 무장도 필요 없다. 이미 어떤 상식도 양심도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법으로 전신을 무장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상식적인 증거를 들이밀어도 법적으로 인정될 수밖에 없는 사실관계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법적 효력이 일부 드러나면 다시 피해가며 새로운 논리를 구축해내는 이들이 법비다. 그러고 보면 ‘비’로서도 ‘법’을 만난 것이 치욕스럽기는 마찬가지겠다. 아직도 더 추락할 곳이 남아 있었음을 발견하게 해준 셈이니.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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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