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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구별에서 가장 불행한 나라들 중 한 곳에 살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지구별에서 가장 환한 희망을 만드는 국민이 되고 있는 중이다. 가장 불행한 나라에서 가장 환한 희망을 만드는 국민은 지금 ‘인류의 모든 위대한 스승들이 권했던’ 무지의 길을 가고 있다.

무지의 길은 ‘파괴적인 힘이 우리에게 해를 입히지 못하게 하려고 그 힘을 파괴하기에 충분한 힘을 키우겠다는 발상’을 버리는 용기의 길이다. 헌법과 국정과 공직을 사유화해서 나라의 살림과 국민의 안녕을 파괴한 권력 엘리트 집단에 대해 국민은 오직 평화의 힘으로 질서 있게 응징하려고 어떤 괴물을 만날지 모르는 무지의 길을 밝히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고 있다.

이 무지의 길에 들어선 국민은 지난 6일 국회 청문회 증인석에 앉아 모르쇠로 일관하는 재벌 총수 9명을 지켜봤고 기업 조직과 기업인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묻기 시작했다. ‘기업의 정신은 애정을 알지 못하고, 탐욕이 아닌 욕구를 알지 못하고, 지역이나 개인에 대한 헌신을 알지 못하고, 공감이나 존경이나 감사를 알지 못하고, 중용이나 검약이나 자제를 알지 못한다’는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웬델 베리의 경고가 옳다면, 돈으로 무한 권력을 행사하는 재벌은 ‘개인의 정신에서 탐욕과 노예근성 따위의 가장 나쁜 점과 약한 점을 정당화하고 부추기면서도 장기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추호도 걱정하지 않는’ 무소불위의 유령이다.

권력 엘리트 집단과 그 너머의 유령을 직면한 국민은 ‘파괴가 자행되는 진짜 이유’, 즉 ‘우리가 경제학의 두 가지 거짓말을 믿고 그에 맞춰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같이 직면하고 있다. ‘시장에서 가격이 매겨지지 않은 것은 가치가 없다.’ ‘우리 지역의 경제를 대기업에 넘겨주어도 괜찮다.’ 이 두 가지 거짓말 속에서 삶을 잃어버리고 나라를 도둑맞은 국민은 삶과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무지의 길을 걷고 있다. 이 무지의 길은 다음 세 가지 특징이 있다. 겸손의 지혜를 받아들이는 것과, 무제한의 욕망과 끝없는 결핍으로부터 벗어나는 것과,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형식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촛불과 함께 거듭 확인되는 점은 2016년 겨울의 ‘형식’이 1960년 4월 봄은 물론 1987년 6월 여름의 형식을 넘어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현재 진행형으로서 결코 탄핵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작금의 이 형식은 바람이 불면 꺼질 것 같은 촛불을 함께 살리면서 가장 불행한 나라에서 가장 환한 희망을 만드는 국민이 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경의’를 표하는 제전이다.

이 경험을 통해 국민은 최종적으로 ‘우리의 존재 전체에 대한 새롭고 충격적인 평가를 수용하는 사람들’이 된다. 국민이 직접 국가를 통치할 수 있고 선출되지 않은 모든 권력을 제어할 수 있는 ‘존재 전체’라는 새롭고 충격적인 평가를 담담하게 수용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무지의 길을 가는 과정에서 다음의 이행이 일어난다. ‘소수가 소유한 나라’에서 ‘다수가 소유한 나라’로, ‘경제적 폭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정부’로, ‘인간의 경제활동과 자연 세계의 조화’를 이루는 평화의 질서로 이행할 수 있다. 국민이 청와대와 국회와 헌법재판소를 거쳐 다시금 선거 투표소로 향한다면 그 단 하나의 이유는 국민 스스로 자신에 대한 새롭고 충격적인 평가를 실행하기 위해서다. 관건은 그런 이행을 제도화하고 내면화할 수 있는 결정적 형식을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누구도 ‘거창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정직함에서 출발한다.

정직은 우리에게 우리의 문제를 정확히 알려주고 그 문제를 정확한 맥락 속에 위치시킨다. 정직해야 ‘거창한 문제는 수없이 많은 작은 해답이 필요하다’는 것과 ‘해결책은 한 번에 농장 하나, 숲 하나, 땅 한 마지기를 치유하는 방식’ 외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그 형식은 정치와 경제의 중앙 집중화 대신 지역 공동체와 지역 경제의 자립을 이루는 것, 새롭고 충격적일 정도의 지방자치와 주민자치를 실행하는 것이다. ‘적절한 규모라는 개념’과 ‘한계를 인정하는 마음’으로 국민이 직접 국가를 통치하고 민주주의로 삶을 영위하는 이 길을 가기 위해서 국민은 이 난국의 어느 끝에 선거 투표소로 가서 차기 대통령을 선출할 것이다.

괴물과 유령의 파괴를 이기는 평화의 길은 무지의 길이자 정직의 길이다. 이 길에서 ‘우리는 책임질 수 있는 것 이상의 권력을 가져서는 안됩니다’라고 말하는 국민은 누구일까.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도움을 주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쉽게 기뻐하지 않는 복잡한 사람이며 영웅도 백만장자도 아닐 것’이다. 바로 이 도시의 시민이고 우리 동네의 주민이다. 대통령과 전문가와 예술가는 그 일원일 뿐이다. 이상 모든 인용문은 웬델 베리의 <지식의 역습>에서 왔다.

김종휘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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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