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인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지난 7월4일 국토교통부 내 ‘도시재생사업기획단’이 출범하면서 본격화되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출범식에서 소위 ‘따뜻한 도시재생’을 강조했다. ‘따뜻한 재생’이란 아마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재난을 막겠다는 뜻이지 않을까 싶다. 도시재생 사업을 하다보면, 주변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고 자연스럽게 임대료도 상승해 임차인들이 쫓겨나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낡은 도시를 재생하면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기본적으로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의 관계는 상호 모순적이다. 도시재생은 어떤 점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억제하려는 공공 도시 정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도시재생은 불가피하게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갈 수 없다. 도시재생은 도시의 경관과 과거의 흔적을 지우는 거대 개발 정책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재생으로 인한 부동산 가치의 상승과 지역개발 논리를 완전히 억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젠트리피케이션도 공간의 고급화로 부동산 가치를 극대화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도시재생의 공공적 원리에서 벗어나려는 본성을 가진다. 그것은 부동산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문화적 전환을 통해 시각적, 미적인 효과를 전유하고자 애를 쓴다. 처음에는 예술인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척하다가 나중에 그 장소가 유명해지면 예술인들을 배척하고 쫓아내려는 이중적 태도를 가진다. 홍대 앞, 경리단길, 성수동 수제화거리, 통영 동피랑 마을 등. 이것이 소위 문화 명소가 가지는 맹점이다. 도시재생으로 새롭게 생성된 문화적 공간이나 공공장소에서의 시각적 조형물들은 역설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심화시키는 미적인 토대를 제공해준다.

그런 점에서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이 교차되는 지점에 문화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문화의 자원은 도시재생의 공간 활성화에 있어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반대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부동산 가치 상승의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사실 젠트리피케이션의 개발 논리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으려는 예술인들의 저항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저항이 그러했고, 공덕동 경의선 공유지 늘장의 저항이 그러하다. 문화적 자원과 예술의 미적 감수성은 오히려 도시 젠트리피케이션에 저항하거나 그 확산을 억제하는 대안으로 작용할 수 있다. 도시를 미적으로 아름답게 만들면서도, 그 문화적 가치가 부동산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길 말이다. 문화적 역량을 가진 주체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문화는 도시재생의 대안적 장으로 전환될 수 있다. 문화와 예술은 반드시 젠트리피케이션의 촉매제 혹은 희생양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문화적 전환은 ‘공간의 고급화’를 위한 자본의 전략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동산 자본의 확장을 막을 수 있는 저항의 가능성도 내장하고 있다. 기획부동산 자본과 상업 시설들이 도시를 지나치게 착취하지 못하도록 예술가들이 도시공간 속에서 버틸 수만 있다면, 문화와 예술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억제시키는 최전선이 될 수 있다. 예술인들이 연대하여 문화적 게토와 유토피아를 만드는 것이다.

문화적 자원을 도시재생 활성화의 수단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한다. 문화적 투자는 도시재생으로 인한 투기 과열의 사회적 비용을 사전에 상쇄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선 예술인들의 저항이 번번이 좌절하는 것은 ‘따뜻한 도시재생’을 위한 강력한 부동산 억제 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막대한 개발이익의 상당부분을 환수한다거나, 임대료 상승의 상한선을 둔다거나, 임차인에게 장기적으로 살 권리를 부여한다거나, 문화예술의 자원들을 일종의 공유지 형태 안으로 수용한다거나 하는 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이러한 억제 정책이 수반된다면, 문화는 ‘따뜻한 도시재생’의 대안이 될 것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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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