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이다. 치열하게 보낸 2017년의 조각들을 떠올려 본다. 시간이 흐를수록 체력은 떨어지고 집중력 또한 예전 같지 않다.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바로 독서라는 행위다. 신간 서적은 매일 쏟아지고 읽어야 할 책은 500권 넘게 대기표를 달고 있다. 과학의 힘으로 수면시간이 사라지거나 자면서도 독서를 할 수 있다면 적어도 1년에 300권 이상의 책읽기가 가능할 텐데.

독서의 목적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가장 피곤한 인간형은 지식자랑에 심취하는 자다. 책에서 얻은 자투리 지식을 전가의 보도처럼 아무 때고 휘두른다. 무술영화로 치면 저잣거리에 처음 등장한 칼잡이와 다를 바 없다. 고가의 명품이 인격 형성의 필요악인 것처럼 단순히 지식 차원에서 맴도는 말을 무한반복한다. 독서와 인격이 따로국밥의 모양새를 취하는 격이다.

다음은 자기계발서 외에는 상종하지 않는 자칭 현실주의자다. 자기계발서는 독자에게 환상을 강요한다. 누구나 ‘1만 시간의 법칙’만 따른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목받는 존재로 변한다는 유혹의 언어를 뿌려댄다. 당신은 선천적으로 열등하기 짝이 없는 실패작이기에 자기계발서를 완독하라고 겁박한다. 현실주의자의 독서란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의 학습과정이다.

수집형 인간도 빼놓을 수 없다. 틈만 나면 서점에서 시간을 보낸다. 생활비보다 책값에 더 많은 돈을 쓴다. 읽은 책보다 산 책이 압도적으로 많다. 원하는 절판서적을 발견하면 가차 없이 지갑을 연다. 가족으로부터 모진 무시와 박해를 당해도 끄떡없다. 그는 인생의 빈 공간을 책으로 채워야 한다는 철학의 소유자다. 문제는 흡연처럼 눈을 감아야지만 수집벽이 멈춰진다는 거다.

독서를 연중행사로 여기는 인간도 있다. 이들은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바쁘다는 언어를 자기과시나 자기포장 용도로 소비한다. 번잡한 상황을 마음껏 자랑하는 동시에 독서를 멀리할 핑계로 악용한다. 당연히 대화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단어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생계를 위해 장시간의 노동을 해야만 하는 ‘진짜로 바쁜’ 경우는 예외다.

베스트셀러만 읽는 독자는 어떨까. 이러한 쏠림현상은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공통의 관심사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베스트셀러를 찾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쉬운 점은 영화시장처럼 베스트셀러에 파묻혀 독서시장에서 자취를 감춰버리는 양서가 부지기수라는 거다. 독서 초심자에게 베스트셀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일지도 모르겠다. 독서의 폭이 넓고 깊어진다면 해결 가능한 사례다.

이러한 경우 외에도 다양한 독서행위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독서가의 정의는 무엇일까. 필자가 생각하는 독서가란 독서 자체를 사랑하는, 목적 없는 독서에 심취한 사람이다. 그들에게 책은 두 번째 세상과 만나는 지혜와 사유의 공간이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공기처럼 책을 품고 마신다. 당연히 자신만의 시간을 거둘 줄 아는 후회 없는 인생을 택한 인물이다.

대통령의 독서가 화제에 오르고는 한다. 책 <대통령의 독서법>에 의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다독가였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문서를 좋아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피터 드러커류의 경영서를 읽었다. 독서 성향에 따라서 정치인의 색깔과 사상이 드러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요점은 독서를 멀리하는 정치인치고 국민으로부터 오래도록 존경을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거다.

올해도 어김없이 빛나는 신간들이 서점에 등장할 예정이다. 그만큼의 독서가가 탄생할 것이고, 그만큼의 지식사회가 형성될 것이다. 키케로는 ‘책이 없는 방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고 말했다. 영혼과 육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싶다면 독서가 우선이다.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텔레비전 전원을 끄자. 이번 주말에는 하워드 진의 책과 함께 아래로부터의 역사와 만나는 시간을 가져 보자.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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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