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총리가 궁지에 몰렸다. 사학재단스캔들로 검찰의 추적대상이 된 것이다. 아사히신문의 3월 여론조사에 의하면 아베내각 지지율은 31%로 급락했으며, 아베의 퇴진을 외치는 집회가 연일 열리고 있다. 우파의 아이콘으로 건재하던 노회한 정치가에게 위기가 닥쳤다. 그는 이번에도 상황을 반전시킬 돌파구를 찾아낼까. 일본을 쥐락펴락하는 아베정치의 탄생배경을 알아보자.

세습문화의 특징은 장인정신에 있다. 조상의 직업을 물려받아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장인의 삶을 이어간다. 음식, 운동, 예술 분야에서 이러한 세습문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아베 역시 마찬가지로 삼대로 이어지는 정치가문의 유산을 톡톡히 받은 인물이다. 여기에 세습문화를 자랑스레 여기는 일본의 사회분위기가 맞물려 아베라는 정치거물이 탄생한다.

학생 시절 아베 신조는 유순한 성향을 가졌지만 정치토론에서만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당연히 아베의 자서전에서는 후자의 이미지만을 강조하고 있다. 토드 로즈의 신간 <평균의 종말>은 사회에서 평균적인 인간의 유효성만을 맹신한다고 비판한다. 인간의 복잡성을 평균치에 억지로 짜맞출 수 없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아베 신조는 평균치와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성장했다.

“가벼운 남자가 아니었다. 실로 무게가 있는 사람이었다. 권력에 아첨하는 짓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권력에 영합하지 않고 하나의 길을 쭉 밀고 가는 사람이었다.” 이는 비리사건의 주인공 아베 신조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책 &lt;아베 삼대&gt;에 등장하는 그의 친할아버지 아베 간에 대한 지인의 평가이다. 그래서일까. 아베 신조는 반골 평화주의자였던 아베 간에 관한 언급을 아낀다. 정치적 수혜는 입었지만 자신과는 가치관이 다르다는 연유에서다. 중의원을 역임했던 아베 간은 1946년 5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3년 후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는 아들 아베 신타로는 신문사 정치기자로 입사한다. 이후 정치인의 딸과 정략결혼하는 아베 신타로. 아버지와 장인의 후광을 업은 아베 신타로는 친한파 정객으로 활동하면서 63세에 자민당 간사장에 취임한다. 그는 아들 아베 신조를 자신의 정치비서로 전격 채용한다.

그렇다면 세습문화의 단점은 무엇일까. 양지바른 장소에서 바르게 자란 화초는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비바람을 동반한 악천후가 닥치면 쉽게 뿌리가 드러나는 한계를 노출한다. 모양 사납게 엉겨붙은 잡초의 성장기와는 다른 모습이다. 서민현실에 대한 이해도가 심각하게 떨어지는 정치인의 상당수가 세습정치의 적자가 아니었던가. 대학 졸업 후 직장과 미국 유학생활을 맛본 아베 도련님은 정치가문의 길을 택한다. 문제는 자신의 친할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정치관을 장착했다는 데 있다. 아베가문이라는 이름만으로 정치활동을 손쉽게 시작했다고 치자. 2대가 이뤄놓은 150억원에 달하는 정치후원금도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정치초년병 아베 신조의 백지와 다름없는 뇌구조였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유명정치인일 뿐 정치 자체가 아니었다.

작금의 아베는 ‘아름다운 일본’을 외치던 10년 전의 나약한 정치인이 아니다. 2012년 12월 자민당의 거두로 다시 태어난 아베 신조. 그는 2차대전 패망 후 미국이 관여한 평화주의 헌법을 갈아치우는 데 주력한다. 자민당은 2018년 3월25일 자위대 보유를 명문화하는 문구를 삽입한 개헌안을 당대회에서 표명했다. 대한민국 독도와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도 아베는 억지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저널리스트 노가미 다다오키는 정치란 최고권력자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A급 전범이었던 외조부를 존경한다는 아베 신조. 순혈주의가 유별난 섬나라의 침략 역사. 그들만의 공동체에서는 늘 새로운 희생양이 필요한 것일까. 일본은 아베라는 유령을 전면에 내세우고 전쟁국가로 회귀하려는 미혹에 빠져 있다.

아베라는 이름의 유령이 일본 안팎을 떠돈다. 군국주의라는 붉은색 유령이.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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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