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란 공평한 가치재일까. 인간에게 주어진 환경이 동일하다는 전제하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인간을 둘러싼 환경은 제각각이다. 저임금 노동자에게 주어진 하루는 기초생활비를 얻기 위한 교환재이다. 그들에게 휴식이나 자유시간이란 비대칭적인 가치재다. 공간 또한 시간의 불공평함을 확인시켜주는 존재다. 서울의 1년과 분쟁에 시달리는 중동지역의 365일은 엄연히 다른 시간이다. 

2014년 6월29일.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는 이슬람국가의 건국을 선포한다. 시리아 동북부와 이라크 북부지역을 기반으로 새로운 국가가 등장한 것이다. 테러의 상징으로 알려진 이슬람국가의 탄생은 시간의 태엽을 반대로 돌려야 맥을 잡을 수 있는 사건이다. 2011년 말 미군은 이라크에서 철수한다.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2011년 5월 이후 중동국가와의 분쟁을 원치 않았던 오바마 정부의 결단이었다.

2009년 취임한 오바마는 전임 대통령이 남용했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정치용어를 폐기한다. 그는 이라크 전쟁을 반대했던 유일한 상원의원이었다. 2007년 1월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의 실패를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유엔의 반대를 무시하고 저지른 이라크전은 미국인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2006년 11월에 치러진 중간선거 전날 사임서를 제출한다. 이라크전으로 인한 퇴역장성들의 비난과 공화당의 하락세가 더해져 부시 정권은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미군은 2003년 12월 과거 미국의 군사적 후원을 받았던 사담 후세인을 체포한다. 후세인 체포작전 이후 이라크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알 카에다의 폭탄테러, 수백만명에 달하는 이라크 난민,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무력충돌 등으로 중동의 화약고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원유국가인 이라크 점령 이후의 계획이 전무했던 미국 정부는 그제야 전쟁의 뼈 아픈 대가를 체감한다.

이라크 후세인 정권은 파격적인 조건을 내놓는다. 사담 후세인의 망명, 미국의 사찰 인정, 미국회사에 석유를 포함한 경제적 이권 제공, 유엔이 인정하는 선거 실시, 아랍 이스라엘 평화협정 협조 등이 그것이다.

이라크 내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부시 정권은 전면전을 시도한다. 걸프전 이후 전쟁능력을 상실한 이라크군은 별다른 저항 없이 패전국의 멍에를 짊어진다.

2003년 2월 세계 각지에서 이라크전 반전시위가 벌어진다. 9·11 테러와 아무 관련이 없는 이라크를 상대로 한 패권국가의 횡포를 반대하는 시위였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반전시위에도 불구하고 미군부는 전쟁의 시간을 원한다. 부시 행정부는 미국언론에 이라크가 9·11 테러와 관련이 있다는 거짓정보를 흘린다. 미군부는 두번째 이라크전을 통해서 이란, 시리아 등을 견제하는 전략을 세운다.

1999년 11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아랍계 유학생 4명이 아프가니스탄의 산악지대를 방문한다. 그들은 오사마 빈 라덴과 접견한 이후 지하디스트로서 충성을 맹세한다. 함부르크 그룹의 리더 아타는 민족주의자로서 제2의 인생을 택한다. 그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키워준 여유롭고 윤택한 시간이 아닌 중동의 밝은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운명의 시간이었다.

종교분쟁을 제외하면 한반도와 중동은 비슷한 지리적 운명을 지녔다. 두 지역은 열강들의 대리전쟁의 각축장이었다. 미소 냉전시대 격전지였던 아프가니스탄, 악의 축으로 분류한 이란과 이라크, 미국 정계의 큰손으로 자리잡은 이스라엘. 지속적인 외세의 침략과 정치공세로 화약고로 변해버린 중동지역은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그들에게 안전하고 평화로운 미래는 없다.

지금도 그곳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의 지옥도가 펼쳐진다. 그들에게 시간이란 성전을 위한 소비재에 불과하다. 국가의 시간은 역사와 지형과 종교와 민족에 따라 운명을 달리한다. 이슬람국가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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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