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눈매의 남자가 홍콩의 섬으로 향한다. 그는 마약을 조제하고 살인과 인신매매를 일삼는 인물을 체포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미국 정보부의 요청으로 문제의 마약소굴에 잠입하는 사나이. 섬에서는 한이라 불리는 마약왕이 3년 간격으로 주최하는 무술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주인공은 대회에 참여한다는 명분으로 본거지에 잠입하여 한의 일당과 사투를 벌인다.

소개하는 내용은 1973년 12월 말 한국에서 개봉했던 영화 <용쟁호투>의 줄거리다. 주연배우는 신장 173㎝, 체중 62㎏의 배우 이소룡(브루스 리·리샤오룽). 그는 이 작품에서 세계 최고의 무술배우로 명성을 굳힌다. 이소룡은 <용쟁호투>에서 직접 연기, 무술지도, 각본, 제작에 참여한다. 이전까지 홍콩 무술영화에서는 배우에게 연기 외에 특별한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다.

미국·홍콩 합작영화 <용쟁호투>의 촬영과정은 불협화음의 연속이었다. 책 <이소룡, 세계와 겨룬 영혼의 승부사>에 의하면 카메라 장비 대부분은 수리 불가 상태였다. 매춘부와 부랑자를 영화에 참여시켜 산만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격투 신에 필요한 에어백이나 매트리스가 없어 스턴트맨은 부상에 시달렸다. 무술배우로 합류한 홍콩 폭력조직 삼합회 조직원 간의 패싸움이 벌어지는 등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영화를 완성하기까지는 이소룡의 존재감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초반부터 이소룡과 갈등을 빚었던 감독 로버트 클루즈는 그가 반사신경이 가장 빠른 배우라고 인정했다. 고질적인 허리통증, 덥고 습한 날씨, 체력 고갈 속에서도 이소룡은 주연배우에게만 제공하는 특식을 거부하고 촬영 보조기사들과 함께 식사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다졌다.

우여곡절 끝에 <용쟁호투>는 미국시장에 진출한다. 이소룡은 단순한 액션배우가 아니라 영화 전반에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었다. 이소룡의 명성은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에 이어 <용쟁호투>에서 정점을 찍는다. 워너 브러더스사에서는 이소룡에게 5편의 영화를 추가로 제작하자고 제안한다. 굴지의 영화사들이 왜소한 체형의 액션배우에게 경쟁적으로 손을 내민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항상 뭔가를 배웁니다. 그것은 항상 자신이 되는 것, 자신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자신감을 갖는 것입니다. 밖에 나가서 성공한 사람을 찾으려 하지 마세요. 그를 따라 하려 하지도 마세요. 지금 홍콩에서 널리 유행하고 있는 현상 가운데 우려스러운 것은 사람들이 매너리즘에 빠져 남을 모방하려고만 할 뿐 결코 존재의 근원에서 ‘어떻게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이소룡의 생각은 그를 영화계의 전설로 만든 동력이다. 미국 전역에 쿵후 도장 체인을 열 계획을 세웠던 무술가. 자신감, 마음의 평온, 성공 모두를 취하고 싶었던 배우. 그는 유명세라는 자유인이 극복해야만 하는 거대한 장벽과 마주친다. 사업 제안이나 돈을 빌리려는 지인들, 사인 공세에 시달리는 일상, 정서불안과 분노조절장애가 그에게 형벌처럼 내려진다. 그제서야 이소룡은 어머니의 조언을 떠올린다. 유명인의 삶은 생각만큼 편하지 않으며 일반인의 삶과 많이 다르다는 충고였다. 불면증, 두통, 건망증에 시달리던 이소룡은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왔다는 말을 지인에게 털어놓는다. 1973년 7월20일. 그는 불과 3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스타의 장례식에는 음악가 프랭크 시내트라, 톰 존스, 세르지오 멘데스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자신의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믿었던 자유인. 지옥 같은 상황에서도 기회를 만들겠다던 승부사. 지식과 의지보다는 실천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무도인. 부정적인 사고는 자신감을 죽이는 마약이라고 일갈했던 예술가. 행복을 추구하되 절대 만족하지 말라던 철학자. 이 모든 생각을 가감없이 영화에서 보여준 브루스 리.

남북 간 소통의 문이 열렸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가의 계산법이 제각각이다. 자유인 이소룡의 생각을 평화 유지에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지금이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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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