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법이 시작된 후 연명의료를 받지 않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첫 사례가 나왔다. 의료진은 “환자가 고통받지 않고 임종했다”며 “병세가 악화돼 자연사(自然死)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며칠 전 접한 뉴스의 한 토막이다.

“군자왈종(君子曰終), 소인왈사(小人曰死)라고 해서 군자가 죽는 것을 종(終)이라 하고, 소인이 죽는 것을 사(死)라고 합니다. 유학의 사생관이 반영된 표현인데, 유학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삶은 내가 어떻게 결정할 수 없습니다. (…) 다만, 어떻게 살다가 죽을 것인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최근에 읽은 <한국철학사>(전호근 지음)의 한 대목이다.

그제는 사무실 뒤편의 심학산에 올랐다. 금방이라도 눈을 흩뿌릴 것 같은 우중충한 날씨였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가 단란한 핵가족을 만났다. 젊은 엄마가 앞장을 서고 초등학생 아들이 등산스틱을 짚었고 딸, 아빠의 순서로 나무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뒤따르던 아빠가 행로에서 이탈하여 낙엽이 쌓인 곳으로 들어가려는 눈치였다. 마침 뒤돌아본 아내가 한마디 했다. “자기, 어디 가?”

지금 여기에서 ‘자기’는 연인을 부르는 호칭이겠지만 사전적인 의미는 남이 아닌 본인을 뜻하는 말이다. 

귓전으로 흘러가는 말에 괜한 용심이 일어나면서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자기(自己)는 문자적으로 ‘스스로의 몸’이다. 심학산의 이 작은 공간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이는 누구일까.

문득 주위를 살피니 우리 다섯 사람 말고도 비탈에 서 있는 벌거벗은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겨울이 오기 전 나무들은 물 공급을 차단하여 잎을 고사시킨다. 월동하기 위해 스스로 잠시 곡기를 끊는 것이다. 가족들과 엇갈리는 곳에서 멈춰 허리를 펴니 온통 상수리나무 사이로 유독 한 그루가 반짝거렸다. 깊은 산에 가서 드물게 만나는 물박달나무였다. 잿빛의 껍질이 여러 겹, 여러 조각으로 벗겨져서 쉽게 알아보는 나무이다. 

하늘로 기품 있게 뻗어올라가는 물박달나무를 낙엽을 밟은 채 오래 쳐다보았다. 자작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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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