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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욕실 거울에 물을 뿌리기에

뭐하는 거니 역정을 냈더니

엄마 이거 보세요

물방울들의 경주

 

거울 벽을 타고 뛰어내리는 물방울들을

얘가 1등 쟤가 2등

아이가 등수를 매기는 동안 나는

벌써 거울의 맨 아래 도달해

부서져버린 고인 물을 보아버렸다

 

나도 왕년엔 러브 스토리를 일곱 번 읽고

여덟 번 목 놓아 울 정도로 수많은

물방울들을 해방시켜왔는데

 

오늘 너의 시선은 거울에 달라붙은

맑고 또렷한 물방울이고

 

나의 시선은 이미 깊은 곳으로

스며들며 새로운 경주를 시작하는

오래된 물방울이지만

 

물방울들의 경주에 눈을 떼지 못한 채

거울 앞에 서 있는 지금

너와 나

새삼 닮아서 닿아 있는 물방울 둘이다

 - 성미정(1967~)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비 온 후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 속 풍경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작고 동그란 풍경을 거꾸로 매달고 있는 그 물방울은 상상의 세계를 엿보는 스크린이었다. 호기심 하나만으로도 물방울은 흥미진진한 그림이 되고 드라마가 되었으며, 먼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 되곤 했다.

아이의 호기심이 거울에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신나는 달리기 경주로 만든다. 호기심은 무엇에든 활기를 불어넣어 사소한 것들을 신기한 것으로 만들고 별것 아닌 것들을 신나는 놀이로 만든다. 그 “맑고 또렷한 물방울” 같은 아이의 눈빛은 거울 맨 아래에 도달해 부서진 물방울을 보는 엄마의 시선과 재미있는 대조를 이룬다. 그래도 엄마는 물방울 경주를 보면서 잠시 아이가 되는 게 싫지 않은 모양이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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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