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에 출간된 조지 오웰의 <1984>가 올해 2월, 뒤늦게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칠순이 다 된 책이 계속 읽히는 것도 대단하지만 현재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 되는 것은 아주 드물다.

백악관 대변인 션 스파이서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 사상 최대의 인파가 몰렸다고 이야기했는데 실제는 그와 달랐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경우와 견주면 반토막이었다. 언론들이 들고일어나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한다고 비판했는데도 백악관 선임고문 켈리앤 콘웨이는 ‘대안적 사실’이라는 표현을 쓰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사실을 왜곡하는 태도는 소설 <1984> 속 빅브러더의 태도와 비교되었고 사람들은 <1984>를 다시 찾았다. 빅브러더는 시민들이 길거리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몰래 듣고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까지 감청한다. 국가는 시민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모든 증거들이 자신들의 주장과 배치되면 깡그리 무시하고, 또 왜곡된 사실을 교육받도록 강요한다. 그런 현실이 닥친 것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1984년은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시작했다. 미국 뉴욕 스튜디오와 프랑스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인공위성으로 실시간 연결해 벌어진 대규모 예술 퍼포먼스를 보면서 새해를 맞이했다. 조지 오웰이 상상한 40년 후의 미래는 얼마나 맞았을까? 로리 앤더슨, 앨런 긴즈버그, 샬롯 무어먼, 톰슨 트윈스, 사포, 요제프 보이스, 어반 삭스같이 이 인공위성 TV쇼에 참가한 쟁쟁한 예술가들이 내린 결론은 반쯤 맞았다였을까? 조지 오웰에 비해서 미디어의 밝은 측면을 더 강조한 이들은 뉴미디어를 예술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첫 세대였기 때문에 조지 오웰보다는 더 낙관적인 입장이었을 것이다.

감시사회를, 그리고 독재를 통렬하게 비판한 소설 <1984>가 민주화 이전의 우리나라에 아무런 비판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하다. 1984년에 언급된 <1984>는 북한을 비롯한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는 사용되었지만 군부 쿠데타 이후에 억압적인 정치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 자신에 대한 비판은 아니었다. 그 시절 흔했던 금서 목록에조차 올랐다는 기억이 없다.

미숙한 고등학생이었던 1984년에 읽은 <1984>는 내게 아직까지 기술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어떤 상태 같은 느낌이었다. 소설 속의 감청, 감시 기술이 아직까지 휴대전화 한번 보지 못한, 상상력 부족한 학생의 머릿속에서는 잘 그려지지 않았다. 조지 오웰의 예측은 더 기다리면 실현되는 것일까? 아니면 틀린 것일까?

시간은 또 30년이 흘렀고 그사이 정치적 민주화를 경험하고 문화적으로 다변화된 사회에 살게 되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는 소설 속 감시 기술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소설 속 감시 기술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운명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파란 불을 깜빡이는 수많은 자동차 블랙박스의 눈을 피할 곳은 없어 보인다. 사물인터넷의 꿈은 모든 것을 네트워크에 연결시키겠다는 것인데, 그런 상황은 네트워크에 연결된 모든 것들을 감시할 수도 있고, 지배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휴대폰을 쥐고 움직인 모든 동선은 데이터로 남는다. 그것을 통해 움직인 무수한 말들은 네트워크 속에 고스란히 남들도 읽을 수 있는 데이터의 형태로 남는다. 자동차 블랙박스까지 모두 인터넷에 연결될, 머지않은, 어떤 날, 한곳에 앉아 천하를 손에 쥘 수 있는 세상이 된다. 네트워크를 쥔 자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실제로 <1984>는 조지 오웰이 간파한 인간 사회와 제도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다. 1949년 당시에는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기계들의 기술적 가능성은 예측이지만 비유에 불과했다. 그 당시에, 1984년에, 그리고 2017년에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그 예측이 기가 막혔기 때문이 아니다.

1949년에 공산주의나 나치즘 같은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 이 책이 영미권에서만 출간 1년 만에 40만부가 팔려 나갔다고 했다. 1984년에 여전히 냉전 중이었던 세계에 이 책의 메시지는 유효했고, 기술적으로 작가의 상상을 어느 정도 따라갔던 시점에 그의 예측과 관련된 맞혀보기가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2017년에는 정부의 막말과 거짓말에 지친 시민들이 <1984>를 다시 꺼내 읽고 있다. 늘 불평등하고 비대칭적인 사회를 이루어온 인간들에게 거기에 더해 기술적 통제 가능성까지 주어진다면 얼마나 암담한 상황이 될까? 어쩌면 <1984>는 2020년에 완벽한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실체를 드러낼지도 모른다.

작가들이, 심지어 미래의 어느 시점을 학자가 언급했다고 하더라도 지시한 해가 숫자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더 과거에 예측해서 이미 지나가버린 1984년으로 시작하지만 소설가, 환경학자, 경제학자, 미래학자, 지질학자, 역사학자 등이 언급한 미래의 어떤 시점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한다. 몇 해는 이미 지나버려 그 예측의 유효성을 우리가 판단해 볼 수 있는 경우도 다루겠지만 그 경우에도 그 과거가 미래에도 의미가 있는 경우만 골라 다룰 예정이다. 진지한 미래 예측이 대부분 오싹한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삶이 팍팍한 탓인데, 낙관적인 전망도 애를 써서 끌어내 볼 생각이다. 미래에 희망을 걸 수 없다면 지금의 분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주일우 과학잡지 ‘에피’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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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