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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지난주 ‘미래 오디세이’의 첫 칼럼은 조지 오웰의 <1984>로 문을 열었다. 이 소설에서 오웰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시간에 따른 변화, 즉 역사에 대한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권력과 역사, 미래에 대한 상상은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 미래는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인간이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수(複數)의 ‘미래들’ 중 어떤 미래로 귀결될지에 대해서는 현재 권력을 쥐고 있는 자가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럼에도 미래 예측이 본격적으로 성행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의 상상력 속에서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변화를 주도하는 원동력으로 등장했다. 프랑스의 쥘 베른(Jules Verne)과 영국의 허버트 조지 웰스(H G Wells)와 같은 소설가들은 우주선, 원자폭탄, 타임머신 등 아직 등장하지 않은 테크놀로지에 대한 상상을 통해 새로운 기계가 가져다줄 선택지의 확장에 주목했다.      

이는 당시의 급격한 기술 변화에 대한 경험이 반영된 것이었다. ‘2차 산업혁명’으로 알려진 산업·기술적 격변기가 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하는 미래상을 낳았던 것이다. 이렇듯 미래에 대한 상상은 무엇보다도 현재를 반영한다.

이미 이 무렵부터 서기 2000년은 손쉽게 예측가능할 정도로 가깝지도 않으면서, 책임지지 않아도 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 대상으로 떠올랐다. 자의적인 시간 구분법에 따른 것에 불과하지만, 밀레니엄이라는 세월의 순환이 가진 무게감이란 것도 무시할 수 없었다. 1900년 무렵 프랑스의 화가 장-마르크 코테와 동료들은 100년 후 사회의 모습을 상상하는 80여점의 그림을 그렸다. ‘2000년 연작(El L’An 2000)’으로 알려진 엽서 크기의 그림들 속에는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는 각종 기계(이발 기계, 청소 기계, 화장 기계 등), 비행기구, 잠수함 등이 나타난다. 코테의 상상 속에서 2000년은 테크놀로지, 특히 기계 기술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한국에서 미래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 후반의 일이었다. 1968년 창립된 한국미래학회는 그로부터 2년 전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와 공동으로 ‘서기 2000년 한국에 관한 조사 연구’라는 제목의 과제를 수행해 1971년 보고서로 발간했다. 참여 연구진은 미래 한국의 모습을 가치관, 인구, 경제, 과학기술, 생활환경, 교육의 여섯 부문으로 나누어 예측했다. 당연하게도 그중에서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과학기술이었다. 19세기 후반 지식인들이 그랬듯, 1970년대 한국에서도 미래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테크놀로지로 여겨졌던 것이다. 오히려 20세기의 진전에 따라 그 경향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들이 예측한 ‘서기 2000년 한국’의 모습은 현재의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논의를 예고하는 듯하다. 무인공장이 출현할 것이며 각급 학교에서 “텔레비전과 티칭 머신이 강의하는 교육시스템”이 활용될 것이라는 대목은 오늘날의 스마트 공장과 무크(MOOC)에 대한 논의를 떠오르게 한다. 기초과학은 국제 수준에 육박해 2000년 무렵에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기도 했다. 교통 분야에서는 “김포와 뉴욕 간의 비행시간이 5시간으로 단축된다”는 예측도 있었다. 30년이라는 비교적 단기 미래에 대한 예측이니만큼 19세기 후반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상상은 적은 편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당연하게도 잘못된 판단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예측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예측에 이르게 된 방법론일 것이다. 19세기 후반 지식들이 현실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쳤다면, 1950년대 이후 ‘과학적’인 미래 예측 방법론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냉전 초기의 살얼음판 같은 국제 정세 속에서 프로젝트 랜드(RAND) 소속의 논리학, 과학철학 전공자들은 과학기술의 변화가 미래 전쟁의 양태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기 위해 ‘델파이 기법’을 창안했다. 델파이 기법은 다수의 전문가로 구성된 패널이 익명으로 예측을 내놓고, 여러 차례의 피드백을 거쳐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기본으로 한다. 초기에는 주로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되었으나, 점차 기업 경영과 정책 결정에 적용되었다.

‘서기 2000년 한국’ 보고서는 델파이 기법이라는 과학적 미래 예측 방법론을 정책 결정에 적용하기 위한 시도의 결과였다. 미래에 대한 관심이 역사와 현재의 권력관계와 뒤얽혀 있다면, 1970년은 그럴싸한 해였다. 10년 동안 두 차례의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고질적인 빈곤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자 지속적인 변화를 통해 도래할 미래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테크놀로지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연구자들도 인정했듯이 “선진제국과는 심한 기술격차를 지닌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앞으로 30년간 선진과학기술의 추적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빛나는 2000년 한국을 만들어낼 힘이 한국 사회 밖에 존재한다는 1970년 한국 과학기술자들의 뼈아픈 자기인식이었다.

모든 미래 예측은 현재를 반영한다. 하지만 현재의 역량을 바탕으로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미래에 대한 상상은 지적 유희에 머물거나, 외재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어떤 미래를 선택할지를 둘러싼 투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를 ‘4차 산업혁명’과 같은 관료적 명명법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미국과 일본에서 시작된 ‘정보혁명’에 미래를 담보잡혔던 1970년의 모습에서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미래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최형섭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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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