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노(John Snow)라는 평범한 이름의 의사가 있다. 조지 R R 마틴 원작으로 용이 불을 뿜는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 존 스노(Jon Snow)와는 철자 하나만 다르다. 스노는 19세기 빅토리아 시기 영국의 다른 의료계 명망가와 달리 요크셔 노동자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런던 대학에서 의학사 및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외과의사로 개업했지만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마취 실력으로 더욱 유명했다. 1853년 봄에는 여덟째 아이를 출산한 빅토리아 여왕의 클로로포름 마취를 담당해 최고의 명의로 신분 상승을 이뤘다.

스노는 마취와 관련된 업적만으로도 의학의 역사에 당당히 이름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그의 지적 탐색 능력이 최고로 발휘되어 뚜렷한 족적을 남긴 분야는 역학과 공중보건학이다. 1840년대 말 영국은 콜레라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당시는 콜레라의 원인에 대해 각종 이론이 난무했다. 콜레라가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지는 과정에 감기처럼 매개체가 있을 것이라는 감염론과 비위생적인 공간에 가득 찬 독기(miasma) 때문이라는 독기론이 맞섰다. 에드윈 채드윅이나 윌리엄 파와 같은 공중보건 전문가조차 미신과도 같은 독기론을 지지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스노는 1848년 콜레라 자료에서 뚜렷한 특징을 발견하고 정체 모를 매개체를 통해 옮는다고 생각했다. 콜레라에 감염된 환자의 배설물에 직접 접촉하거나 배설물에 오염된 물을 마셔 생긴다고 믿었다. 감염론을 입증하기 위해 스노는 콜레라가 발생한 빈민촌을 꼼꼼히 조사해 증거를 모았고 런던에 식수를 제공하는 회사의 자료를 모았다. 두 자료를 취합해 스노는 특정 상수회사의 상수도가 오염돼 콜레라 발생이 높다는 가설을 세우고 콜레라가 유행한 브로드가의 펌프를 제거하여 사망자를 줄이는 역사적 성공을 거뒀다.

역학은 개별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임상의학과 달리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처 방법을 찾는 의학의 한 분야다. 스노의 업적은 현대적 의미의 역학 조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모범 사례다. 콜레라 대규모 유행을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현장 조사를 통해 감염 경로와 원인을 밝혀 콜레라 감염에 대한 새로운 이론과 분석 기법을 창안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콜레라 감염의 원인균인 비브리오 콜레라 박테리아를 스노가 뇌졸중으로 사망한 지 25년이 지난 1883년에야 독일의 병리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확인했다는 점이다.

150년 전 런던이 직면했던 상황처럼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운 도시 빈민가도 여전히 많다. 안전한 마실 물이 없는 인구가 11억명이 넘고, 상하수도와 같은 공중 위생 서비스를 못 받는 사람이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인 약 30억명이다. 콜레라와 같은 감염성 질환으로 사망하는 어린이만 해도 매년 200만명이다. 새로운 지적 탐색에 열정적이었던 스노가 오래 살았다면 콜레라가 아닌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스노의 업적으로 공중 위생 운동은 전기를 맞았다. 생전 스노의 감염론을 격하게 반대했던 채드윅의 공중 위생 개선 주장은 역설적이게도 스노의 업적 이후 한층 강화된 제도로 안착했다.

21세기 세계의 거대 도시는 19세기 런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중 위생 상태가 개선됐다. 감염병학과 쓰레기 관리 기술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관련 전문 지식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스노가 브로드가에서 집집마다 확인하여 작성한 지도를 지금은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컴퓨터 화면에 지도로 그려낼 수도 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는 인플루엔자 발생에 대한 보고서를 매주 업데이트하고 다양한 도표와 지도로 제공하고 있다. 구글이 개발한 플루 트렌드는 전 세계 구글 이용자들의 검색 데이터베이스를 가공하여 인플루엔자 확산 현황과 예측 정보를 만들고 있다. 현대 역학의 주된 접근 방법은 19세기 중반 스노의 활동처럼 희생자 개인의 이력과 접촉한 사람을 찾아 정보를 얻는 일이다.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 역학 조사관은 메르스 감염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폐쇄회로TV에 찍힌 비디오파일과 카드 사용 내역까지 분석했다. 질병 확산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 이용하는 많은 수학적 모형은 다수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접촉하는 상황만을 가정하고 있다. 개인이 서로 어떤 식으로 접촉하는지 보여주는 현실적 모형이 없고, 수많은 대중의 이동을 모형화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계산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2004년 로스앨러모스국립연구소 연구진은 고성능 슈퍼컴퓨터 클러스터와 애초 도시계획 용도로 개발한 트랜심스(TranSimS)라는 모형을 활용해 몇백만명을 대상으로 개인 간의 접촉을 모형화한 역학 시뮬레이션 모형 에피심스(EpiSimS)를 개발했다. 에피심스에서는 가상의 병원균을 인구집단에 퍼뜨려 병원균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여러 대응조치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아볼 수 있다. 모의실험을 통해 질병이 퍼지는 과정에 사회 연결망 구조를 포함시키자 질병이 지수적으로 급속히 확산된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모의실험을 통해 질병 확산 중단은 어떤 대응조치를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대응조치를 발동할 것인가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됐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물리적 대상의 형상, 성질, 상태 등의 정보를 사이버세계에 동일하게 구현하는 개념인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2018년 10대 전략 기술로 선정했다. 2014년 말 싱가포르는 버추얼 싱가포르 프로젝트를 시작해 도시를 3차원으로 모사한 도시 가상화 모델을 만들어 공개할 예정이다. 2048년 미래 도시에 발생한 신종 감염병 역학 조사를 맡은 존 스노(Joan Snow)는 아마도 의학·보건학 전공자가 아니라 프로그래밍에 능숙한 데이터 과학자일 것이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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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