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미래 예측은 밝아야 한다. 불행한 미래를 미리 듣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각종 미래 예측 보고서에서 종종 보이는 과도한 긍정성도 이렇게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밝고 희망적인 미래를 제시하고 설득해야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

역사학자가 미래를 예측하기 꺼리는 것은 그가 밝고 희망적인 얘기를 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학자들은 반복되는 불행을 설명하고 성급한 희망을 품지 않도록 주의하는 일에 더 익숙하다. 그래서 역사학자가 미래를 말하겠다고 나선다면 우리는 그 미래가 항상 밝지는 않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과연 독자가 이 불행한 미래를 끝까지 참고 읽겠느냐 하는 것이다. 역사학자가 불행한 미래를 말하려면 세심한 전략이 필요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불행한 미래를 알리려고 나선 과학사학자인 나오미 오레스케스와 에릭 콘웨이는 <다가올 역사, 서양 문명의 몰락>이라는 책에서 과학과 픽션을 활용하여 미래를 역사로 변환했다. 2393년의 역사가가 등장해서 20세기와 21세기에 일어난 일들을 서술하는 식이다. 역사학자가 섣부르게 미래를 예측한다는 비판을 피하는 동시에,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되는 얘기를 풀어놓기 위해 먼 미래에 사는 역사가의 입을 빌린 것이다.

현재의 지식을 다 끌어모은 다음 2393년이라는 안전한 발언 시점을 찾아간 역사가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서 서양 문명의 몰락을 가져온 제2의 암흑기, 혹은 반암흑기를 발견한다. 이 반암흑기는 1988년부터 2093년까지였다. 2017년의 서구 사회는 반암흑기의 긴장이 고조되고 문제가 심화되는 지점에 있는 셈이다. 최근 겪은 폭염이나 허리케인도 그런 과정의 일부로 볼 수 있다. 

2393년의 역사가가 담담하게 서술하는 21세기 중반의 일들은 섬뜩하다. “2040년에는 혹서와 가뭄이 더 이상 이변이 아니었다. 식수와 식량을 배급하고 맬서스주의에 따라 아이를 하나만 낳도록 하는 인구 정책을 실시하는 등 통제 조치가 취해졌다. … 그러다가 2041년 여름 북반구에 전례 없는 폭염이 닥쳐 지구를 달구고 곡물을 말려 죽였다.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고 거의 모든 도시에서 식량을 요구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 2050년대에 들어서자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정부가 전복되었다. … 2060년 여름이 되자 북극지방의 만년설이 사라졌다. 수십 종의 생물이 멸종했다. 21세기의 도도새와 같은 상징이었던 북극곰도 사라졌다.”

2073~2093년에는 대붕괴와 대이동이 있었다. 남극과 그린란드의 빙하가 붕괴하면서 해수면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빙하와 함께 사회도 붕괴했다. 해수면 상승의 영향으로 15억명가량이 이동해야 했고, 인구 이동과 함께 중세의 흑사병에 버금가는 2차 흑사병이 퍼졌다. 네덜란드와 뉴욕과 플로리다는 물에 잠겼고, 호주와 아프리카에는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고, 제2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등장했다. 인간은 멸종하지 않았지만 전혀 다른 세상을 살게 되었다.

2093년의 몰락은 인류의 뒤통수를 치듯이 오지 않았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 상황에서 보란 듯이 벌어졌다. 미래의 역사가는 자랑인지 조롱인지 모를 평가를 내린다. “서양 문명은 스스로 종말을 예측할 능력이 있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예측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문명과는 다르다.” 안타깝게도 미래를 예측하는 지식과 기술은 미래 세계의 몰락을 막아주지 못했다. “사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들의 지식이 무척 방대했다는 점, 그런데도 지식에 따라 행동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아는 것이 힘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미래의 역사가가 우리의 시대를 반암흑기라고 부르는 것은 이 모든 변화의 핵심에 지식의 문제, 특히 “아는 것이 힘이 되지 않았던 것”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2393년의 관점에서 반암흑기는 이렇게 정의된다. “계몽을 이루었다는 서양의 기술과학 국가들에 20세기 후반부에 드리운 반지성주의의 그림자. 이 때문에 과학적 지식에 따라 행동하지 못했고 21세기 후반과 22세기에 침수와 사막화라는 재앙을 초래했다.” 반암흑기의 시작을 1988년으로 보는 것은 그 해에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이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즉 닥칠 일을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문제가 시작된 때였다.

미래의 역사가는 21세기의 인류가 많이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하려 노력한다. 우선 과학자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깊은 지식을 쌓았지만, 전문 분야들을 넘나들며 종합적인 그림을 그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일은 무척 어려웠다. 또 지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행동과 정책을 바꿀 힘을 가지지 못했고, 화석연료를 더 많이 사용할수록 이득을 보는 ‘탄소연소 복합체’에 정치적, 경제적 권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시장근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체계가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을 배척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환경 연구를 통해 인류와 자연환경을 보호하려면 정부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탄소연소 복합체에서는 과학을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싸워야 할 적으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굳이 2393년으로 가서 돌아보지 않아도 우리의 미래는 과학 지식을 둘러싼 갈등으로 가득하다. 미래를 예측하는 지식이 있어도 그에 따라 미래를 바꾸려는 시도는 새로운 미래를 반대하는 강력한 힘에 가로막히기 일쑤다. 어떤 과학은 미래 과학으로 칭송받지만, 어떤 과학은 미래를 논할 자격도 얻지 못한다. 2093년의 대붕괴 같은 불행한 미래 얘기는 멋진 미래에 대한 선전에 가려 잘 들리지 않는다. 2030년에는 인공지능이 우리 생활을 확 바꾸어 놓고, 2045년에는 우리 몸의 한계를 넘어 죽음도 통제하는 특이점이 오리라는 얘기들 속에서 2093년의 몰락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불행한 미래는 인기가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하면 곤란하다.

<전치형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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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